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 영광21
  • 승인 2021.12.0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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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3 - 1. 갑신년 중추 칠산바다의 월식 ⑬

“소아야! 고집 피우덜 말고 내 말 들으란 말이다.”
왼손에 보따리를 든 나이든 여자가 귀거친 소리를 한다. 젊은 여자의 이름이 소아인 모양이다. 
“고모, 고말은 인자 고만허소. 나도 그러고 싶네만, 개양할매가 그러라 허는디 어쩌긋능가.”
어깨를 처뜨린 소아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개양할맨지 개똥할맨지 참말로 맹랑헌 할매고만. 아그는 집이서 나야제 무신 심보로 타관객지 굴속서 나라 헌다냐? 
“개양할매가 할매 생각혀서 그러것능가. 이 손지딸 잘 되고, 내 뱃속에 든 애기 잘 되라고 그러는거제.”
“손지딸 생각허는 할매 맘을 어찌 의심헐 수 있것냐만, 곰방 아그가 나올 참이라 지대로 걷도 못허는 널 뎃꼬 이 달밤에 여울굴까지 걸어갈라허니 참말로 대책이 안 서서 그런다.”
“고모, 개양할매가 이 손지딸 죽일 일은 없을 턴게, 할매가 허라는대로 혀보세.”
대숲에 숨어서 두 여자의 대화를 엿듣는 주뱅의 머리는 뒤엉켰다. 두 여자의 대화가 황당무계한 탓이다. 그렇지만 주뱅은 그 대화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살자면 두 여자의 등에 비수를 꽂아야 될 입장이다.  
“암만 생각혀도 개양할매는 몹쓸 할매다. 죽막동 당골네네 집에다 야글 해놨응께 아그를 거거서 나면 될턴디, 묻헐라고 여울굴 가서 나라고 헐까 잉!”
“고모, 고만허란 말이네. 우리 야글 개양할매가 다 듣고 있을턴디, 할매가 뿔따구 나서 해꼬지라도 허믄 어쩔라고 이러는가.”
칠산바다의 해신 개양할미가 혹시 저주를 내릴지도 모른다는 말에 고모는 투덜거림을 접는다.
“아니 근디 고모, 잘 나오덜 안험서 어쩌 똥오짐만 마랍당가?”
“아그가 나올 때 되믄 다 그러는 거여!”
“고모, 쩔로 다시 가봐야 쓰것네!”
소아가 무거운 배를 두 손으로 붙들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다. 고모가 부축한다.  
소아의 미투리가 향한 곳은 주뱅이 숨어 있는 시누대 대숲 쪽이다. 주뱅은 몸을 최대한 낮추고 잔뜩 움츠린다. 머리를 파묻을 듯 봉두난발을 땅에 붙인 주뱅은 애꾸눈을 부릅뜬다. 
주뱅의 짚신 앞코에서 댓 발자국 떨어진 수성당 앞뜰 대숲 경계에 이른 소아가 급히 치마를 올린 뒤 엉덩이를 까며 쪼그려 앉는다. 
근래 주뱅은 여인네 엉덩이를 본 적이 없다. 30대 이후엔 젊은 여인네의 엉덩이를 단 한번도 구경한 적 없다.
하늘의 달빛을 양껏 빨아들이는 소아의 엉덩이는 요즘 초가지붕 위에서 나날이 여무는 박 두덩이가 겹쳐 있는 것 같다. 젊은 여인네의 앙증맞은 엉덩이가 꿈틀대니 하늘의 달도 희롱을 당하고, 대숲의 주뱅도 희롱을 당할 듯 하지만 달도, 주뱅도 그럴만한 겨를이 없다. 
북두칠성이 내려다보니 하늘의 달은 임산부의 출산 과정을 지켜봐야 되고, 바다의 도적인 주뱅은 여차하면 생존을 위해 살인이라도 저질러야 할 급박한 처지다.       
갑오년 중추 달밤에 수성당 앞뜰 왼편 시누대 대숲 앞에서 엉덩이를 까고 마려운 대소변을 한꺼번에 보려는 임산부는 조소아다. 
창녕 조씨로 소아素娥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소아’는 ‘달’을 다르게 이르는 말이다. 달 속에 있는 전설 속의 선녀인 ‘항아姮娥’와 엇비슷한 뜻을 품었다.
조소아는 당년 18세. 위도 대돌목 출신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10여년 전에 이승을 떴다. 아버지는 마을 앞바다인 앞도로 고기잡이를 나갔다 익사했고 어머니는 염병에 걸려 죽었다. 앞도는 대돌목 마을 앞 자갈밭까지 와 닿은 칠산바다의 일부다. 
대돌목의 한자 지명은 ‘대저항大猪項’. 마을의 지형이 ‘큰 돼지의 목’과 같아서 이런 이름을 가졌다고 전해 온다. 
하지만 일부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앞바다인 앞도의 물길이 크게 돌아 ‘대돌목’이란 지명을 얻었다고 여긴다. ‘대돌목’을 한자로 옮기자니 부득이 ‘대저항’이라 적게 되었다고 해석한다. 
한반도 남서쪽 끝자락엔 유명한 해협이 있다. 한반도에서 조류가 가장 빠른 이 해협은 다름 아닌 ‘울돌목’이다. 해남 화원반도와 진도 사이에 있는 울돌목은 ‘울다’와 ‘돌다’에 ‘목’이 덧붙여진 지명이다. 
사람의 목이나 길의 좁아지는 지점을 목이라 하듯, 넓은 곳에서 좁아지는 부분을 목이라 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조선 수군을 구한 명량해전의 현장인 울돌목도 그렇다. 바닷물이 좁은 해협을 흐르며 울기도 하고, 돌기도 해서 그런 지명을 갖게 되었다. 
위도 남서쪽에 있는 마을인 대돌목도 울돌목과 엇비슷한 지명이리라. 바닷물이 ‘크게 도는 마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