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 영광21
  • 승인 2021.12.2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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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5 - 1. 갑신년 중추 칠산바다의 월식 ⑮

 

아이고 배야!… 오메, 나 죽것네! 고모!…고모!… 애, 애, 애기가 나아 나올라고 이런당가?…고모, 참말로 죽것단 말이네!”
조소아가 산통을 호소하자 송씨가 보따리를 땅에 내려놓고 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며 치성을 올린다.
“어진 지앙님네, 일월 지앙님네, 천지 지앙님네, 쫌만 쫌만 도와 도와 주요! 여그서 아그를 나믄 참말로 안 된당께 쫌만 쫌만 지둘러 주요! 짜룬 맹은 잇어 주고 진진 맹은 사려 담는 어진 지앙님네, 일월 지앙님네, 천지 지앙님네, 어찌던지 저찌던지 조카딸 소아가 쩌그 아래 여울굴서 일 없이 탈없이 아그를 쑤욱 낳기 도와주요.…”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치성을 올린 송씨가 쪼그려 앉아 볼일을 보고 있는 조소아의 양쪽 겨드랑이 밑을 바짝 치켜들며 호통을 친다. 

“어여 인나란 말이다! 여그 수성당 대밭서 아그를 날 순 없응께 언능 인나라고!”
“아이고 고모, 못 일어나것네. 오짐도 마랍고, 똥도 마란디, 어쩌 똥오짐은 안 나오고 배만 이렇기 아프당가! 아이고 고모, 오옴메 나 죽것네!”
“싸그 인나란 말이다. 오짐도 안 나오고, 똥도 안 나옴서 아랫배가 뒤집아지는 건 아그가 곰방 나올라고 그런건께 언능 인나라고!”
“나도 그러고 싶네만 옴싹달싹을 못 허것네. 고모, 어쩌 이런당가? 오메, 나 죽것네!”

두 여자의 실랑이를 엿보고 있자니 주뱅의 머리는 꺼림텁텁해지고, 등골에서는 진땀이 흘러내린다. 물것들이 사정없이 달려들어도 손으로 내쫓거나 때려잡을 수도 없다. 
그런 처지에서 주뱅은 머리를 핑핑 굴려 두 여자가 주고받는 말토막들을 주섬주섬 짜맞춘다. 모기 보고 칼 빼든다고 괜한 칼부림을 하고 싶지 않아서다.  

‘저 두 년은 위도년들이고, 고모라는 저 여편넨 애를 밴 저 큰애기를 요 아래 여울굴로 댓고 가서 애를 낳기 헐라나 본디, 참말로 요상시런 년들이고만. 애기는 집이서 낳는 것인디 먼일로 위도서 배타고 나와가꼬 여그 여울굴서 날라고 저 지랄을 친다냐!…’
주뱅은 머리를 치켜들고 오른손에 든 비수를 다시 거머쥔다. 
“요모냥 요꼴로 여울굴까장 걸어갈 수 있것냐?”

힘겹게 일어나서 치마끈을 졸라맨 조소아를 부축하며 송씨가 묻는다.
“걷기가 힘든디 가다가 질바닥서 애길 날지, 장불서 날지, 바우끝이서 날지, 나도 참 겁이 나네만 수성할매가 허라는대로 혀야제 나가 어쩌 것능가.”
이어지는 산통에 기운이 쭉 빠진 조소아의 대답엔 힘이 없다. 

사실 밝은 대낮에도 수성당 앞뜰서 여울굴까지 걸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수성당을 품고 있는 시누대 대숲의 오솔길을 수백 보 걸어가면 가파른 비탈길이 나온다. 
적벽강 갯가 자갈밭으로 내려가는 짧은 내리막길이다. 자갈밭에서도 수백 보를 걸어야 여울굴까지 길게 이어지는 갯바위를 탈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썰물이 나서 여울굴에 걸어갈 수 있다. 밀물이 드는 물참 때라면 가당치 않은 일이다.  

하늘엔 달이 떴다. 두 여인은 갯바위를 타는 덴 이골이 난 섬사람들이다. 그렇긴 하지만 출산이 임박한 조소아를 부축해서 여울굴까지 걸어간다는 것은, 송씨에겐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그것도 달밤에 잡다한 출산용품을 싼 보따리를 왼손에 들고서 말이다. 

“소아야!”
“어이 고모!”
“널 댓꼬 여울굴까장 걸어가기도 그라고, 고 껌껌헌 굴속서 아그를 난다는 것도 그라고, 참말로 옹삭시럽고 깝깝헌 일인디, 어쩔꺼나? 죽막동 당골네네 집이서 해산허믄 좋것는디.”
조소아가 짧은 한숨을 몇번 내뱉은 뒤.
“수성할매가 꼭 여울굴 가서 나라는디, 난들 어쩌겄능가. 고모한티는 성가실코 꺽쩡시런 일이겄지만 신할매가 그라는디 나가 어찌끼 허것능가. 근디 고모, 또 또 아 아이고 오옴메 배야!”  조소아가 허리까지 둥글게 부른 배를 두 팔로 끌어안고 다시 산통을 호소한다. 

송씨는 말문을 닫고 땅에 내려놓았던 보따리를 챙겨 든다. 여울굴로 출발하기 위함이다. 
그때다. 수성당 입구에서 인기척이 났다. 대숲에 숨어 있는 주뱅의 애꾸눈이 퉁방울처럼 휘둥그레진다. 
‘걸어오는 꼬라지가 앙얼이 같은디, 저 새끼가 멋헐라고 열로 기어온다냐? 이년들헌티 우덜 쌍판떼길 내밀었다간 참말로 무신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디, 으따 미치고 환장허것네! 데간절 이 일을 어쩌믄 좋다냐?’(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