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엔 사랑의 섬, 바다의 꽃섬으로
새봄엔 사랑의 섬, 바다의 꽃섬으로
  • 영광21
  • 승인 2022.02.2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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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후박나무·해장죽 어우러진 여수 오동도

 

봄의 기운이 완연해졌다. 남도의 새봄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여수다. 바닷바람은 아직 쌀쌀하지만 ‘연인들의 섬’, ‘사랑의 섬’으로 간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인 여수 오동도다.
오동도는 전통의 ‘사랑의 섬’이다. 오래된 연인들의 데이트는 물론 신혼여행 코스였다. 지금도 바다를 바라보며 울창한 동백숲을 걷는 탐방로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버스커버스커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한 ‘여수밤바다’도 낭만적이다. 가족 나들이 코스로도 아주 좋다.

봉황새 찾던 섬 ‘봄마중’ 여행객들 발길
오동도는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섬’, 동백꽃이 많이 피어 ‘바다의 꽃섬’으로 불린다. 지금은 동백나무가 많지만 본디 오동나무가 많았다고 전한다. 오동나무 열매를 먹는 봉황새도 많이 살았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섬의 모양이 오동잎을 닮아 ‘오동도’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섬의 면적은 10만㎡ 남짓. 여기에 동백나무 3,0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선홍빛 동백꽃이 활짝 피면 황홀경을 연출한다.
동백꽃은 11월 하순부터 피기 시작해 이듬해 봄에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나비와 벌이 활동하지 않는 겨울엔 동박새의 도움을 받아 꽃가루받이를 한다.
오동도에 빽빽하던 오동나무가 없어진 사연도 전해진다. 고려 말기의 승려 신돈과 관련된 얘기다. 신돈은 승려 출신의 개혁정치가였고 풍수지리에도 밝았다
신돈은 기울어가는 고려왕조를 대신할 새 임금이 전라도에서 나올 것으로 믿었다. 한자로 전라도를 쓸 때 온전할 전全자를 쓰는데, 사람인人 밑에 임금왕王을 쓰는 게 걸렸다. 오동도에 오동나무가 많아 상서로운 새 봉황이 많이 날아드는 것도 그랬다. 
신돈은 이 사실을 공민왕한테 고했다. 공민왕은 온전할전에 썼던 사람인人 대신, 들입入 자로 바꿔 쓰도록 했다. 오동나무도 그때 모두 베어냈다는 얘기다.
오동나무가 없어도, 오동도는 충분히 멋진 섬이다. 해장죽(시누대)이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양옆에서 가운데로 휘어진 아치형의 시누대터널도 있다. 연인이 손을 잡고 시누대터널을 지나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한다. 매듭이 평편한 시누대를 만지면 시련을 이기고 희망을 일군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오동도에 후박나무도 많다. ‘울릉도호박엿’의 재료가 되는 후박나무다. 울릉도호박엿은 후박나무의 진액과 껍질의 분말을 넣어 만든다. 난대수종인 후박나무를 잘 모르는 뭍사람들이 호박으로 이해하면서 ‘호박엿’으로 알려졌다.

 

방파제길 그림, 동백숲길·기암괴석 탄성
오동도로 들어가는 방파제 길도 멋스럽다. 무인도였던 오동도를 뭍과 연결시켜 준 방파제다. 길이가 800여m 된다. 
동백열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유람선이나 모터보트를 타도 된다. 시원한 바다를 보며 두런두런 걸어가면 더 좋다. 이 길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혔다. 오동도 방파제는 1945년 완공됐다.
오동도로 들어가면 기암절벽이 즐비하다. 300년 묵은 지네가 살았다는 용굴이 있다. 병풍바위·코끼리바위도 있다. 오랜 세월과 자연의 힘으로 만들어진 주상절리와 판상절리도 장관이다. 산책로에서 만나는 남근목도 웃음 짓게 한다. 영락없다.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숲길에서 만나는 해안 풍경도 아름답다. 오동도등대와 등대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광도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오동도등대는 1952년 처음 불을 밝혔다. 둥근 콘크리트 건축물이었다. 지금의 등대는 2002년에 높이 27m의 팔각형으로 새로 지었다.
등대전망대에서 향일암을 품은 돌산도와 경남 남해?하동 일대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길이 300m 넘는 큰배도 떠 있다. 벽체에 검정색을 칠한 배는 컨테이너를 싣고 온 것이다. 빨간색을 칠한 선박은 유조선으로 구분된다. 
이 일대가 고려 말 정지 장군의 관음포대첩,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의 현장이기도 하다.
여순사건기념관도 오동도에서 만난다. 음악분수대 옆 여수엑스포기념관에 꾸며져 있다. 여순사건은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군인들이 제주4·3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무장 봉기했고, 정부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사건을 가리킨다.
기념관에서 눈길을 끄는 조형물이 ‘손가락총’이다. 손가락이 가리키면 빨갱이나 부역자로 몰렸고,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상황을 떠올려 준다. 여순사건 관련 영상도 돌아간다. 여순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인 해방 이후 상황, 여순사건 전개과정, 사적지 소개 등을 판넬로 보여준다.                  

 / 전남새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