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노릇’과 SRF
‘어른 노릇’과 SRF
  • 영광21
  • 승인 2022.04.1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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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호일 집행위원장 
영광SRF발전소반대 범대위

삶은 수많은 관계와 노릇이 신경세포처럼 얽혀 있다.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고 각자의 역할과 노릇이 숙명처럼 주어지게 된다. 자식 노릇, 남편 노릇, 부모 노릇 등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파생되는 각자의 노릇들은 우리들의 인생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중 가장 어렵고 힘든 노릇은 역시 ‘어른 노릇’이다. 내가 어른이 된다는 것, 그래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슬퍼도 크게 울지 못하고, 기뻐도 크게 웃지 못하는 위선의 길이다.
어른의 길은 뒤따르는 세대에게는 좌표가 되지만 본인에게는 매 순간 순간마다 선택의 연속이며 거기에 책임까지 뒤따르게 되니 인생사란 결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는 될 수 없어 보인다.
조선후기 문신인 임연당 이양연은 시집인 <임연당별집>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금일오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눈 쌓인 길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가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터이니
어른의 역할과 노릇을 가장 간명하게 정리한 시구절이다.
하지만 SRF라는 괴물과 싸우고 있는 우리 지역의 현실은 어떠한가? 
후세들을 위해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눈 쌓인 길을 앞서가야 할 어른들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고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직함을 무작정 어른으로 치부하여 기득권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SRF는 지금 지역의 가장 큰 화두이며 현안문제가 되어 있다. 당장에 내 문제는 아닐지라도 결국은 이 터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 후세들에게는 ‘삶의 질’의 문제이며 ‘생존권’의 문제이다. 따라서 찬반을 떠나 현 상황을 야기하고 그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어른들이 전적으로 해결해야 되는 문제이다.
SRF 소각시설의 부당함에 맞서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그것을 반대하는 군민들을 싸잡아 비난해서는 안된다. 더더욱 본인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상대를 비난하는 것으로 대리만족하는 ‘어른 놀이’는 이제 멈추어야 한다.
본인의 언행에 책임을 지는 모습으로 뒤따르는 후세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어른 노릇’이다. 
어느새 기성세대가 되어 버린 필자 자신 또한 돌아보고 반성하며 어른이 어른다운 모습, 사람이 사람다운 모습으로 바로 서는 그날을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