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타고 선사시대로 가을소풍을
타임머신 타고 선사시대로 가을소풍을
  • 영광21
  • 승인 2022.10.1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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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상석, 채석장까지 갖춘 화순 고인돌 유적

 

살랑거리는 가을바람에 몸을 싣는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인돌 유적지로 가을소풍을 간다. 선사시대의 무덤인 고인돌과 가을이 어우러져 옛 추억을 떠올려주는 화순이다.
우리나라에는 고인돌이 많다. 한반도에 4만기, 남쪽에만 2만6,000여기가 있다고 한다. 세계 고인돌의 40%에 이른다. 고인돌은 전남도에 모여 있다. 영산강과 지석강변에 2만여기가 있다. ‘고인돌왕국’이다.
화순에는 596기가 있다. 지난 2000년 화순과 전북 고창, 경기 강화의 고인돌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그 중심이 화순이었다.  


화순의 고인돌은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돌을 캐고 무덤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알 수 있는 채석장이 있어서다. 시쳇말로 격이 다르다.
고인돌은 대개 들녘이나 평지에 널려 있다. 고인돌이 어린이들 놀이터로 어른들의 새참 장소로 활용되면서 많이 훼손됐다. 하지만 화순의 고인돌은 산속에 있어 보존이 잘 됐다. 
세계에서 가장 큰 덮개돌, 고인돌의 상석도 화순에 있다. 폭 7m, 높이 4m로 무게가 자그마치 200여톤이나 된다. 이름도 ‘핑매바위’로 붙여져 있다. 

 

 

탁자·기반·개석식 … 고인돌 전시장
핑매바위와 관련된 전설도 전해진다. 운주사에서 천불천탑을 쌓는다는 소식을 들은 마고할미가 치마폭에 크고 작은 돌을 담아 가던 중,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마고할미는 천불천탑을 다 쌓은 줄 알고 갖고 가던 돌을 그 자리에다 쏟아버렸다. 핑매바위 위쪽에 있는 각시바위 채석장이다.
마고할미는 그 가운데 가장 큰 돌 하나를 들어 핑- 내쳤다. 핑매바위다. 바위 위에는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여기에다 왼손으로 돌을 던져 넣으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단순히 산속 고인돌이 아니고 민초들의 삶 속에 함께했던 고인돌이다.
덮개돌로 쓰일만한 바위가 차곡차곡 포개져 있는 마당바위 채석장도 있다. 
덮개돌을 캐려면 먼저 바위에 홈을 판 다음 나무를 끼워 넣어 벌어지도록 했다. 그 틈에 물을 부어 돌을 떼어냈다. 떼어내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옮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덮개돌을 캐고 옮기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됐고 또 다치고 죽었을지….
고인돌의 덮개돌을 캐내던 산 중턱 채석장까지 나무 데크로 계단이 놓여 있다. 바위가 넓고 평평하다고 ‘마당바위’로 이름 붙여졌다.
월곡저수지 앞에 관청바위 채석장이 있다. 크고 작은 덮개돌이 널려 있고 돌을 캐내던 흔적도 뚜렷하게 남아있다. 이 길이 옛날에 보성과 나주를 오가는 길목이었다. 나주목사를 뵈러 가던 보성원님이 여기서 민원을 해결했다고 한다. 원님이 쉬면서 관청 일을 봤다고 ‘관청바위’로 이름 붙었다.
감태바위 채석장도 있다. 포개진 큰 바위가 눈사람처럼 생겼다. 덮개돌을 떼어낸 흔적이 남아있고 덮개돌을 떼어내 암벽 위에 올려놓은 것도 보인다. 돌을 떼어내려고 파놓은 홈도 뚜렷하다.
관청바위 채석장 주변에도 고인돌이 지천이다. 앉은뱅이 책상 높이의 탁자식 고인돌, 고임돌이 고여진 기반식 고인돌, 무덤방이 드러난 개석식 고인돌도 많다. 고인돌의 전시장이다.
화순 고인돌 유적지는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돌아보는 게 일반적이다. 발품 팔아 걸으면 더 좋다. 편도 4㎞, 길도 비교적 평탄하다.

 

 

거석테마파크, 고택 ‘볼거리’
고인돌 유적지 부근에 들러볼 곳도 많다. 선사인이 살았던 움집과 망루, 고상가옥을 갖추고 농사, 사냥, 어로를 체험할 수 있는 선사체험장이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고인돌을 만날 수 있는 거석 테마파크도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콜롬비아 산 우구스틴 돌멘과 칠레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을 비롯 북한 관산리 고인돌, 중국 석붕, 인도 우산돌, 세네감비아 환상열석 등을 전시하고 있다.
돌멘은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남서쪽으로 450㎞ 떨어져 있는 산 우그스틴 고고공원에 있다. 커다란 눈이나 입, 앞니, 뾰족하면서 큰 코, 튀어나온 혀 등이 독특하다. 
모아이 석상은 남미대륙에서 3,800㎞ 떨어져 있는 남태평양의 이스터섬에 있는 석상이다. 겉모습이 사람을 닮았다. 좁은 이마, 높고 큰 코, 긴 귀, 굳게 다문 입술, 낮고 오목한 눈을 지녔다.
고 홍남순 변호사의 생가도 모산마을에 있다. 2006년 작고한 홍남순 변호사는 평생을 인권운동가로 살았다. 양심수를 위한 무료변론을 해주는 등 70년대 굵직한 시국사건의 재판에는 홍 변호사가 있었다.
5·18때엔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의 도심 진입을 막기 위해 수습대책위원들과 함께 농성광장까지 ‘죽음의 행진’을 벌였다. 당시 일흔의 나이에 내란수괴로 지목돼 군사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80년대에도 군부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월곡리 달아실엔 양참사댁과 학재고택이 있다. 양참사댁은 양재형이 살면서 참사직을 제수받아 그렇게 불렸다. ㄷ자 모양의 안채와 ㅡ자 형태의 사랑채가 ㅁ자를 이룬다. 학재고택은 학재 양승수가 살던 집이다. 두 집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 전남새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