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불갑산상사화축제 시·수필 인터넷 공모전 수상작
2022 불갑산상사화축제 시·수필 인터넷 공모전 수상작
  • 영광21
  • 승인 2022.10.2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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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상 수상작

상사화, 작은 꽃 하나가 지쳐가는 나를 위로하는 구나

정승민 / 영광군 

나의 고향은 영광이다. 영광에서도 읍내가 아닌 주위에 논과 밭만 있는 시골이다. 
나는 영광에서 유, 초, 중, 고를 나왔고 타 지역으로 대학을 갔다. 타 지역에서 공부하고 취직하다 보니 고향으로 내려오는 횟수는 적어졌고 명절이나 편하게 고향에 와서 쉴 수 있었다. 올해에도 다를 건 없었다. 지독히도 더웠던 여름이 서서히 가시고 그 자리에 가을이 조금씩 들어찰 무렵, 추석이 성큼 다가왔다. 
나는 늘 그렇듯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의 풍경은 시시각각으로 바뀌었다. 빌딩 숲을 지나고 개미 떼 같은 자동차들 사이를 쉼 없이 달리고 커다란 강이 보였고 터널을 지났다. 점점 영광이 가까워질수록 큰 건물들은 보이지 않고 색 바랜 논밭과 높고 푸른 산, 오염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눈부신 하늘이 나를 맞이하였다. 원래 이렇게 따뜻한 풍경이었나 싶을 정도로 영광은 올 때마다 변하지 않고 깨끗했으며 정겨웠다. 
그렇게 맑은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던 그때, 내 눈에 빨간 꽃 한 송이가 들어왔다. 잎 하나 없이 곧게 뻗은 줄기에 덩그러니 꽃송이만 달려 있는, 볼 때마다 참 신기한 꽃, 상사화였다. 나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상사화에서 한참을 눈을 못 떼었던 것 같다. 그렇게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속에 무언가가 심히도 일렁이었다.
부모님의 품을 떠나 혼자 생활한 지 5년. 도시는 생각보다 쓸쓸했다.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높은 건물들과 조금만 발걸음을 늦춰도 나를 밀고 가버리는 사람들, 날카롭게 울어대는 자동차들, 눈이 아프도록 빛나는 네온사인들,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고 실패해도 누구 하나 손 내밀어 주기는커녕 비웃기 바쁜 사회. 그 속에 나는 혼자였다. 그토록 원했던 독립이었고 갈망했던 도시였다. 
지긋지긋한 시골을 벗어나기만 하면 세련된 도시생활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삼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사랑만 받고 자란 나는 사회에 나오자 눈치만 받고 있더라. 잘못한 게 없는데 나는 늘 죄인이었고 늘 사과를 입에 달고 살았다. 
어쩌다 한번 걸려 오는 부모님의 전화는 괜히 짜증스러웠다. 귀하게 키운 막내딸이 혼자 도시에 나가서 잘 지내고 있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너무도 궁금하셨을 텐데 나는 그런 걱정조차 부담이 될 정도로 여유가 없어 그저 빨리 끊기 바빴다. 잘 살겠다고 독립했건만 스스로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1년, 3년, 5년.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있었고 나는 이제 조금 지쳐 있었다.
바쁜 시간의 연속이었고 고향에서의 기억을 추억할 여유는 당연히 없었다. 친구들도 나만큼 바쁠 테니 연락들이 알아서 서서히 줄어갔던 것 같은데 나는 그런 친구들의 안부조차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저 폭풍처럼 쉼 없이 휘몰아치는 인간관계 속에 숨 한번 쉬려고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어쩌다 명절에 집에 와도 지쳐 쓰러져 그저 침대에 누워 자거나 먹거나 핸드폰만 쳐다보았고 집주변 한번 거닐 생각조차 못 했다. 하물며 하늘 한번 쳐다볼 마음조차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던 것 같다. 이젠 너무 지쳐버린 내 마음이 여유를 갈망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유독 푸르른 영광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을을 준비하시는 농부 아저씨들, 정자에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시는 할머니들, 손주 손을 꼬옥 잡고 길을 거니는 할아버지와 손에 사탕을 들고 있는 아이, 새파란 하늘과 흰 구름, 듣기 좋게 지져 귀는 새들, 가을이 다가온 줄도 모르고 노래하는 매미. 그리고, 그리고, 그 사이에 눈에 띄게 피어있는 빨간 상사화. 단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상사화였다. 
가을마다 피어났을 텐데. 늘 이 자리에 매년 피어나고 졌을 텐데. 나는 왜 이리 오랜만에 보는 듯한 느낌일까. 참으로 희한하게도 상사화를 보자 그제야 ‘아, 내가 진짜 고향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이 꽃이 조금은 특별한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일렁이는 이 무언가는 어쩌면 그리움일지도.
매년 가을, 영광에서 가장 큰 행사는 상사화축제였다. 초등학생이었을 무렵, 처음으로 아빠 손을 잡고 상사화를 보러 불갑사에 방문했다. 그때 불갑사는 지금처럼 예쁘게 꾸며진 곳이 아니었다. 거의 산길이었던 것 같고 가게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상사화는 아주 예쁘게 피어있었다. 꽃들의 계절인 봄도 아니고 푸른 나뭇잎도 져버리는 가을이건만 활짝 펴있는 것도 신기했고 장미도 아닌데 그렇게 새빨간 색인 것도 신기했다. 
그중에 단연 최고는 바로 상사화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 어릴 때 상사화를 보고 내가 한 첫 마디는 “꽃게를 닮은 꽃이다!”였던 것 같다. 내가 늘 보던 예쁜 꽃잎이 아닌 마치 가시처럼 위로 솟은 꽃잎 모양이 게의 집게발 같았고 꽃게처럼 새빨간 자태가 어린 나의 눈에는 영락없는 꽃게였다. 
그때를 시작으로 나는 매년 상사화 축제를 다녔다. 물론 가족과도 함께 가기도 했지만, 가족보다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간 게 더 기억에 남는다. 글짓기에 관심이 많던 나였기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매년 열리는 상사화예술제에 출전했었다. 
그늘이든 벤치든 잔디밭이든 아무 곳에나 자리 잡고 앉아 햇살을 조명 삼아 종이에 글을 써 내려갔다. 그때의 그 푸르던 하늘, 따사롭게 내리쬐던 햇빛, 살랑이던 바람과 축제 준비로 분주하던 분위기, 음식점의 냄새들과 눈만 돌리면 길가에 예쁘게 피어있는 상사화. 
아, 이제 알겠다. 내가 느끼는 이 그리움은, 상사화를 보며 마음에 일렁이는 이 마음은 어쩌면 그렇게 아무 걱정 없이 여유를 즐길 수 있었던,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며, 내가 좋아하는 꽃을 바라보며, 내가 좋아하는 날씨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그 학창 시절인가 보다. 
생기 넘치던 그 시절의 나는 어디로 가고 지금의 나는 왜 이리 지쳐버린 걸까. 나의 꿈은 작가였는데. 글 쓰는 것을 그토록 좋아하던 나였는데. 예술제에 출전해서 곧잘 상도 받아왔고 그때의 그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때의 성취감은커녕, 상실감만이 가득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나의 꿈은, 나의 목표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세상과 타협하고 나를 억눌러가며 꾸역꾸역 걸어 온 길인데. 꿈이 아닌 현실을 쫓아 여기까지 겨우 왔는데. 그 길에 작게 피어난 상사화 하나가 나를 멈춰 세운다. 
너는 원래 이렇게 텅 빈 눈을 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나의 옆에서 나를 바라보며 글을 쓰던 너의 눈빛은 한없이 찬란했다고. 좋아하는 것을 하며 행복해하던 너의 모습은 꽃보다 아름다웠다고. 너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그 작은 꽃이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집 앞에 핀 상사화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그때의 나와 마주하듯이 나는 그렇게 한참을 떠날 수 없었다.
이제 보니 상사화는 내게 학창 시절 그 자체였다. 나의 꿈은 무엇이었고, 내가 얼마나 글을 좋아했고, 그때의 내가 얼마나 찬란했고, 그 시절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나도 잊고 살았다. 현실이 너무 고달프고 점점 더 살기 각박해지는 세상 속에서 나의 꿈 따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반대의 길을 가는데 그런 것들을 떠올려봤자 속만 아프니까 꾹꾹 눌러 담아 어딘가에 던져 놓았던 것 같은데. 이 작은 상사화가 그것들을 내 앞에 다시 펼쳐놓았다. 
이 작은 꽃 하나가 지쳐가는 나를 붙잡고 내게 위로를 건네었다. 추웠던 내 마음이 별안간 빨갛게 달아올라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조금은 나,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작은 꽃 앞에, 과거의 찬란했던 내 앞에 내 다짐을 전했다. 그 꿈은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나는 여전히 나라고. 이렇게 나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고. 언젠가는 꿈에 조금 더 가까워져서 다시 너를 찾아오겠다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가을이 깊어진다. 상사화는 약한 꽃이기에 잠시 아름답게 피어나다 지겠지만 내 마음속 상사화 한 송이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이 꽃잎을 틔었다. 오래도록 찬란하게 피어날 것을 조금은 기대해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가본다.

 

 

■ 금상 수상작 

상사화 축제를 다녀와서

김상구 / 부산시 동래구

붉은 울음 뚝뚝 흘리며 한여름 삼복더위에
요르단 강 건너 집사람 보낸 달포 뒤
향나무 밑에 불쑥 솟은 상사화

그리워 그리워서 
타버린 검은 무늬 꽃잎에 새긴 꽃대
가슴에 안고 지새던 수많은 날
서러운 꽃마저
지쳐 시들어 버린 늦가을
보고 싶어 서성이던 꽃진 자리에
새파란 잎이 진눈개비 맞는다
꽃따로 잎따로 만날순 없어도
땅속에서 작은 인경으로 엉겨붙어
꽃과 잎을 키우나 보다

세월이 흘러 상사화 축제날에
꽃잎은 지천으로 휘몰이 장단에 흔들리고
상사화 전설 속의 스님 닮고파
구부정한 늙은이 꽃길을 걷는다


■ 은상 수상작

상사화

정광철 / 광주시 남구

불갑산에 불이 붙었다
소식을 접한 행락객들이
이른 아침
개미떼처럼 꼬리를 문다

불은 어디서 시작 되었을까

여름이 품고 자연이 빚은
경이로운 광경이다

정열이 살아 숨쉬는
저 불꽃을 보라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가슴 터질 듯 잉잉거린다

내가 만약 꽃이라면
수많은 꽃 중에 상사화 꽃이 될래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정열을 사랑할래
사랑하다 숨이 멎는다 해도
첫사랑을 남기고 구름같이 흘러간
여인보다 너를 더 사랑할래
영원토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