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마을이야기 53 - 대마면 상화마을

마을이름만 상화, 농주가 나눠져 있지 한마을로 지내오고 있으며 상을 당했을 때나 모든 일을 할 때에는 한 마을로 통한다. 북쪽으로 칠률마을을, 서쪽이 농주마을, 남쪽이 산정마을이며, 동쪽 말잔등을 넘으면 송죽리 의촌마을이 있다.
마을 동쪽으로 처음 말잔등, 무제봉, 화산이 겹겹이 있는데 무제봉은 화평리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기우제도 지냈으며 산정마을에서 시작돼 상화마을에 와서 끝자락을 이룬다.
상화마을은 바로 산밑에 위치하고 있어 물이 많을 것 같지만 주변 마을에 비해 녹두밭 웃머리라 할만큼 물이 귀한 편이며 말잔등 너머에 송죽리 의촌지대가 낮아 물이 많은 편이다. 현재는 지하수 모터로 농업용수를 쓰고 있다. 1970년 이전에는 30호가 살다가 지금은 수십여가구가 살고 있다.
마을 뒤 산등성이가 말잔등 같다 해 속칭 등미산이라고도 하며 또는 말꼬리형세를 했다 해 숫말이라고도 칭하는데 상화마을과 대조적으로 하화마을이 아래에 있으니 아랫숫말, 상화마을이 위에 있으니 일명 웃숫말이라고도 총한다.
그러나 1789년부터 마을명 문헌상에는 상화(上禾)라고 나오는데 쌀이 많이 나오는 고장이라고 칭해졌다고 한다.
마을 진입로를 낼 때 옮긴 것이 현존하는 1기 고인돌이지만 밭에서 논으로 개간했을 때나 경지정리때 많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보아 청동기시대부터 본 마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으로 이 지역은 산과 바다를 동시에 끼고 있어 어패류 채취, 식물채집, 동물 수렵이 가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당시 난으로 가정이 파탄돼 피난도중 밀양박씨인 양옥 대옥 평옥 3형제가 이곳에 와서보니 산세가 아주 좋고 마을앞 들판이 평탄해 마을에 정착하게 됐다고 전해온다.
이 마을에 30여호가 살 때 밀양박씨가 주축을 이루었고 이 마을에 마지막으로 산 때는 세분의 자손중 한가구가 6·25후까지 살다가 부산으로 이사를 갔으며 그 외에는100여년전에 수동·농주마을로 이사를 갔다.
자료제공 : 영광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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