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경이 세사람 총살 … 모두 공포에 떨고 있다”
“순경이 세사람 총살 … 모두 공포에 떨고 있다”
  • 영광21
  • 승인 2023.08.24 13:4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2년간 잠들던 개인 일기장  역사의 진실규명 증거자료로 ‘빛’
군경 토벌작전 상황을 보여주는 A어르신의 1951뇬 2월 일기. 굵은 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사건의 진실규명에 기여한 2월11일 일기다. / 진실화해위 제공

 

“아침 총소리에 깨었다. 어머님이 동리를 포위했다는 말에는 죄 없는 나까지 떨었다. 그런데 순경이 간 뒤에 동리 사람의 말을 들으니 OO이, OO씨 딸, OO씨 세 사람을 체포하여 갔고, 동래 청년들도 전체 기압을 받았다 함. 순경이 몇 십명 동리를 포위하여 OO씨 딸, OO씨, OO이를 체포하여 내종에는 세 사람을 총살했다 함. …(중략)모두 공포에 떨고 있다.”

1951년 2월11일 당시 군서면 신하리(1983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영광읍 편입)에 거주하던 A(91)어르신이 쓴 일기가 72년 동안 잠자던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데 빛을 발했다. 
민족동란 시기 상황을 생생히 기록한 일기 내용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18일 열린 제60차 회의에서 영광군 5개 지역의 민간인 희생사건의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는데 중요한 증거자료가 됐다. 
이 사건은 한국전쟁 전후인 1948년 5월부터 1951년 3월 사이 영광군 각 지역에 거주하던 민간인 47명이 군인과 경찰에게 불법적으로 희생된 사건이다.
조사 결과 가해 주체는 육군 제11사단과 해군 309, 301, 704 함정의 등 군인, 경찰로 확인됐다. 제11사단 군인들과 해군, 경찰은 관내 수복작전과 부역혐의자, 좌익혐의자 수색 과정에서 민간인을 현장에서 살해하거나 연행한 후 적법절차 없이 살해했다. 
희생자들은 좌익혐의나 부역혐의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희생되거나 토벌작전을 피해 피난하던 민간인들이었다. 주로 20~30대 남성이었고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다. 
이번 조사과정에서 참고인 A어르신이 한국전쟁 당시 작성한 ‘1950~51년 일기’를 수집한 것은 또 다른 성과다. 일기에는 본인이 거주하던 신하리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이 기재돼 있었다. A어르신은 평생 일기를 써온 것으로 전해진다.

A어르신의 1950~51년 일기장 표지 / 진실화해위 제공

 

일기에는 또 인민군이 영광군을 점령한 날짜와 경찰이 수복한 날짜를 비롯해 당시 주민들이 느끼던 공포감 등이 서술돼 있어 역사적 사료로 가치도 높다고 할 수 있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과 별도로 법성면 용덕리 주민 8명이 좌익 활동에 협조했다는 의심을 받아 1950년 6월29일 용덕리 용현마을 뒷산(올챙이골)에서 경찰에 의해 희생된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희생자는 주로 30~50대 남성이었다.
진실화해위는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1951년 2월 불갑에서 군경에 의해 불갑산 입산자, 입산자 가족이라는 이유 등으로 희생된 민간인과 1950년 8~10월 백수에서 62명이 공무원·우익인사와 그 가족,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인민군과 빨치산에 의해 희생된 사건 등 2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