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 인터넷 공모전 대상작
■ 2023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 인터넷 공모전 대상작
  • 영광21
  • 승인 2023.10.26 11:5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지 도둑, 상사화 같은 만남 

최영택<광주광역시 북구>

하나의 선택에 달라진 모든 것
상사화 볼 때마다 떠오르는 40여년전 여운과 추억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 첫 구절은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시작하고 그 선택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마지막 구절로 끝이 납니다.
산행의 갈림길에 서면 그 시가 문득 떠오르기도 하는데, 얼마 전 우연히 젊은 시절의 일기장을 넘기다가 40여년 전 편지를 도둑맞은 경험이 쓰여 있는 것을 보고 그때 편지를 도둑맞지 않았다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하고 상상을 해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1970년대 후반 봄, 당시 저는 병역 미필의 법대 4학년이었고 졸업논문 작성과 국가고시, 취업 준비를 하면서 가정교사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어 도시락으로 점심, 더러는 저녁까지 해결하면서 강의실, 도서관, 가정교사 집을 맴도는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 캠퍼스의 낭만이나 도시의 야경 등은 꿈도 꾸지 못하는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학자금 융자를 계속 받고 있었고 요즘 시대 청춘들과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공통점, 가지고 있는 가진 재산이라고는 한정된 시간뿐인 당시 상황에서 연애 감정은 사치와 같은 존재였다고 할까요.
2학기는 바쁠 것 같아서 1학기 초에 졸업논문부터 최대한 빨리 끝내자는 목표를 세웠고 복사기나 컴퓨터도 없었던 시절, 도서관 자료실에서 참고서적들을 쌓아놓고 여기저기 자료들을 참고하며 수작업으로 편집하는 과정은 집중과 인내가 필요한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수로 볼펜을 건드려 바닥에 떨어트리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의 정적을 깬 큰소리에 급히 볼펜을 주우려 의자를 빼고 허리를 숙이는 순간 여학생의 주홍색 구두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들이하기 좋은 화창한 봄날, 스스로 설정한 공부 감옥에 갇혀 암흑의 생활을 하던 청춘에게 여학생의 주홍 구두는 감옥 안에 갑자기 피어난 장미꽃 같아, 모든 것을 흔드는 시각과 문화적 충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컬러 TV도 없던 시절, 여학생의 구두는 대개 검은색, 갈색 계통이었고 주홍색 구두는 아마도 처음 본 것 같았으니 구두 주인이 선구적인 미적 감각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었습니다. 
다시 자리에 앉으며 잠시 정면의 구두 주인을 보니 어떤 여학생이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이 건너편 자리에 언제 앉았는지도 모르고 책만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저는 좋은 말로 집중력이 뛰어났거나, 다른 의미로는 아주 둔감한 학생이었나 봅니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한눈에 보아도 대단한 미인이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예전에 오가는 길에 몇 번은 마주쳤었고, 이름도 학과도 모르나 기억나는 것은 남색 원피스의 자태가 어울렸던 고운 모습들이었고 정면에서 모습을 자세히 보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아!이런 학생도 있었구나 하고 잠시 혼란을 겪었으나 해야 할 일에 비해 4학년의 봄은 너무 짧았기에 잠깐의 충격은 잊어버리고서 책 속으로 다시 빠져들었고 그 여학생이 자리를 언제 떠났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중앙도서관 열람실 창가에 고정석을 마련하고 강의실, 도서관, 집만 왔다 갔다 하는 무미건조한 생활이 계속되고 있던 얼마 후 도서관 내 자리 근처에서 갑자기 그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자리로 들어갈 때마다 눈에 띄고 휴게실, 창가, 계단 등 여러 장소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니 점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통상 여학생 옆자리는 일부러 또 불편하기도 해서 될 수 있는 대로 앉지 않았고 도서관에서 보이는 다른 여학생들은 관심도 없었는데 그 여학생은 하루라도 안 보이면 궁금하기까지 하니 억누르고 있었던 주홍 구두의 충격이 상당히 컸었나 봅니다.
봄이 끝나가고 더위가 찾아왔을 때 에어컨도 없는 도서관에 염증이 나기 시작하며 공부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고, 잡념이 계속 쌓이는 소위 슬럼프를 겪으며, 결국 한심하게도 그 여학생의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면 여러 가지로 공부에 심각한 지장이 있겠다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진 재산은 시간뿐이라고 아무리 상황론을 들먹이며 자제하던 4학년의 이성도 억눌렸던 청춘의 감성에 결국은 무너진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믿을만한 교우를 통해 여학생의 이름과 신상을 파악하니 4학년 동갑 나이에. 상당히 유복한 집안의 학생으로 눈에 뜨이는 미모라 쉽게 대시하는 학생이 없다고 했습니다.
일기장에는 그 여학생을 이니셜을 사용 Y로 표현하고 있었고, 충격요법을 써서 만나든지 거절당하든지 가부간에 결정을 내야만 공부할 수 있다는 절박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편지를 써서 만나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7월쯤인가 ROTC 훈련생들이 병영집체훈련에서 복귀하면서 군가를 부르고 도서관 옆을 통과하던 날, 소란스러움에 공부하던 학생들이 창가로 몰려가 구경하는 혼란한 상황을 틈타 Y의 자리에, 준비하고 있었던 일방적으로 장소와 시간 약속을 정한 쪽지를 놓고 도서관을 나오면서 여러 가지 대안을 세웠습니다.
만나면 좋겠지만, 거절당하면 방학 중에는 다른 대학의 도서관으로 옮기는 등의 세부계획 등을 포함해서 1, 2, 3안 등 나름대로 행동계획을 미리 검토했습니다. 
그날 내가 정한 일방적 약속 시각에서 1시간을 더 기다렸지만, Y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Y는 내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을 자주 보였기에 거절당할 확률은 크게 잡지 않았었고 그만큼 충격파는 더욱 컸습니다.
4학년 그 귀중한 시기,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이 무슨 헛짓인가 싶어 친구들이라도 그 사실을 알면 지청구 들어 마땅한 사례가 틀림없기에 다음날 오전까지 도저히 학교에 가지 못하다가 오후에 용기를 내어 등교하는 도서관 계단에서 Y를 마주치게 되어 이름을 불렀더니 들은 척도 안 하고 가버렸습니다. 그때 마음을 접었습니다.
창피함만 무릅쓴다면 새롭게 장소 옮기고 적응하는 시간을 절약하고 공부할 수 있겠다는 그런 오기가 생겨 모든 대안을 포기하고 예전 장소에서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체념이 달관과 연결된 경우라 할 수 있고 어찌 되었든지 슬럼프는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후로도 Y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내게 관심 있는 것처럼 보이던 행동도 눈빛도 여전했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던 그 시절 병역필에 공부 좀 하는 학생이라면 삼성, 현대, 대우 등 당시 최고의 대기업에 모두 합격한 상태에서 어느 기업이 더 나을까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다면 요즘 학생들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중에 병역 미필자를 채용하는 회사도 간혹 있었고 중요한 행사와 시험이 짧은 간격으로 계속 이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방황할 시간도 없었으며 바쁜 일정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틈새 시간이 생기고 가을이 자리를 잡았을 때, 언제부터인지 Y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나 관심을 가질 마음의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 지하 휴게실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앞좌석의 남학생 3명이 식사를 거의 마치고 대화하는 내용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책상에 편지가 하나 놓여 있어서 내용을 보니 지난번에 못 나가서 미안하다며 몇 시에 어디에서 만나자고 쓰여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나가면서 바로 이 사람이라고 하며 나를 말로 지목하고는 나가버렸습니다. 돌발 상황에 황당하기는 했으나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니 짐작 가는 경황이 있었습니다. 
Y에서 거절당하고 마음 추스르며 공부하던 어느 날 저녁, 집에 가는 스쿨버스에 올라 중간쯤에 앉았는데 Y가 친구 1명과 함께 교문 쪽 방향에서 들어오더니 내 좌석 통로 건너편 옆자리에 앉았는데 들어오는 순간 눈이 마주쳤을 때 표정이 묘했습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하교 스쿨버스에 오르면서 Y를 같은 버스 안에서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으나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것이었습니다. 

유추해보자면 Y는 스쿨버스에서 마주쳤던 그날 내게 만나자는 약속의 편지를 써서 언제인지 모르지만 내 지정석에 놓아두었는데 그 편지는 지하 식당에서 나를 지목한 그 학생이 중간에 가로채 전달되지 않았고, Y는 내가 거절한 것으로 오해하고 그런 눈길을 보냈었던 것이나,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내 입장은 왜 저러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도 시험에 파묻혀서 외면하게 되어 서로 어긋났던 것입니다. 
그 편지를 받았었다면 아마도 어떤 바쁜 상황에서라도 Y를 만나러 당연히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편지 도둑 때문에 당연히 Y를 만나러 갈 수 없었으니 그것을 거절이라고 오해한 그 상황들이 Y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편지 도둑이 있어 내가 약속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아마도 Y는 평생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 미모면 데이트 신청을 받기만 했을 테고 본인이 신청해 본 것은 처음일 수도 있으니 엄청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남자인 저도 역시 온갖 생각이 다 들고 충격이 상당히 오랫동안 남아 있었으니까요. 
편지 도둑이 진실을 제게 알려주던 날부터, 혼돈의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되었습니다. 
그때는 Y가 도서관에 나오지 않고 있었으나 법대에서 도서관으로 오는 길 중간에 Y의 강의실이 있었고 Y의 마음을 알았으니 강의실로 찾아가면 당연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Y에게 거절당한 7월에서 1달이 지난 8월, 병역 신체검사에서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1급 현역 판정을 받았기에 6개월 후 졸업하면 바로 군대에 가야 하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어 전과 다른 새로운 상황 변수가 추가되었기에 숙고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부하며 그 갈림길을 계속 배회하면서도 결국 Y를 찾아가 만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서로가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균형을 깨트리는 것이 현명한 결정일까 하는 의문이 계속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성과 감성을 저울추에 올려 아무리 재고 또 재보아도 시험에 합격하거나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빈손인 여건에서 졸업반 여학생을 만나 사귀자고 하면서 6개월 후에 군대에 가니 3년을 기다려 달라고 한다면 당사자는 모르겠으나 부모에게는 어이없는 욕심으로 보였을 것이고 그쯤에서 멈추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강의실로 찾아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본인이나 친구들을 통해서 만나고 진실을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4년간의 법대 교육과정에서 배양된 차가운 이성이, 뜨거운 감성을 억제하였고, 갈림길에서 너무 많이 멀어진 상황에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얼굴을 못 보니, 안 보면 잊힌다는 격언대로 열정 또한 식어 냉정한 이성이 정상대로 작동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매일 도서관에서 무수히 대면하면서도 우리는 왜 대화 한번 제대로 나누어보지 못하고 서로 바라만 보며 숨바꼭질하면서 상사화 전설 같고 갑돌이와 갑순이 같은 경우가 되었던 것일까요. 

우리 모두 한번의 시도가 거절당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고 3학년이었다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두 번째 시도하기에는 중요한 시험 등의 장애물로 서로 너무 바쁘고 4학년 마지막 학기에 이르러서는 시간적으로나 다른 이유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사자를 직접 만나 사귀고 싶다고 말하면 될 것을, 편지라는 매개체를 사용하여 일이 꼬이게 만든 우리 두 사람의 행태는 요즘 관점으로 보면 갑돌이와 갑순이의 70년대 버전으로 아마도 박물관에 전시되어도 될 구세대의 유물일지도 모릅니다.     
편지 도둑의 실토에도 우리는 이후 단 한번도 대면할 기회가 없이 졸업하게 되었고 나중에 알았지만, Y는 한 학기를 쉬어 후기 졸업했습니다. 
인생을 되돌릴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지만 편지 도둑이 없었거나 강의실로 찾아가 우리가 만날 수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냉정한 이성에서 본다면, 우리가 함께했을 5개월 남짓 단기간에 몇번이나 만날 수 있었고 또 얼마만큼의 유대감이 생겼을지 모르나 그 과정은 절대로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고 가장 힘든 사람은 아마도 Y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과는 달리 남자들도 대부분 30세 이전에 결혼하였고, 여학생들은 대학 졸업 후 늦어도 대개는 3년 안에 결혼하는 것이 보통이어서 동갑끼리 결혼을 성취한 분들에 대하여는 34개월의 군 생활과 취업까지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산처럼 많은 난관을 이겨낸 것이기에 존경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제 옆자리에 Y가 있을 가능성은 그런 고난의 길을 통과해야 가능했기에, 그런 관점에서 돌아본다면, 편지 도둑은 그 행위는 미우나 모두에게 방황의 시간을 덜어준 셈입니다.
요즘은 지자체에서 많이 심고 가꾸어 산책길이나 공원에서 9월에 피어나는 상사화를 볼 때마다 강렬한 느낌의 주홍 구두와 Y와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해마다 불갑사에 가서 상사화 사진을 촬영하고 오는 것을 아내는 잘 이해 못합니다.
하지만 스님과 처자의 애잔한 여러 전설과 산속 고찰의 고요함이 어우러진 상사화 군락을 보는 것이 공원이나 산책길에서 몇 송이 상사화를 보는 것과 같을 수는 없겠지요. 
상사화 전설처럼 가슴만 태우다 대화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Y와의 추억은 지금은 일기장의 기록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지금의 일상이 너무 소중해서 상사화를 볼 때마다 그 추억이 떠올려진다 해도 기억 저편에 여운으로 남을 뿐이고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같은 하루가 무수히 반복된다는 설정이 주어진다면 한번쯤은 강의실로 Y를 찾아가서 만나는 경우의 길을 시도해보고도 싶지만 그것은 남자의 환상일 것 같습니다.
모든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 최선은 아니고 상사화가 피어 있는 꽃길을 걷거나, 가끔은 비가 오는 날 커피향기에서 떠올릴 수 있는 옛 추억이 있는 것도 그냥 삶의 한 부분으로 남겨두고 여백은 상상으로 채워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잔설은 산 아래 멀리 있는 발치에서 보는 것은 아름답지만 막상 산에 올라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면 먼지에 덮인 얼음알갱이에 불과한 것처럼 애틋한 만남은 그 과정으로만 남겨두는 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이루지 못한 만남은 상사화처럼 늘 아련한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시들거나 변하지도 않으며 상상 속에 계속 담기어 있으니까요.
 Y도, 편지 도둑도 긴 시간이 지난 지금, 변한 모습을 보는 그것보다 추억 속 일기장에 그대로 있는 것이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아무리 곱게 나이 먹어도 모든 것은 20대의 반짝이는 젊음과 비교될 수는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