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1주년 축시
창간 21주년 축시
  • 영광21
  • 승인 2023.10.2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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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있었네 영광에

처음에 빛이었던 사랑이 있었네
큰 바다 검은 파도를 건너온 사랑이었네
자라나는 머리를 깎아 자신을 지우고
아프고 슬픈 이들을 찾아 몸으로 마음으로 
함께 보금자리가 되던 사랑이었네 
때로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온몸의 뼈와 살을 곧추세워 오뉴월
땡볕과 쏟아지는 바닷바람에 말리며
불갑의 양어깨 위에 사랑을 얹고
법성의 양 무릎 아래 빛으로 출렁여서
어금니를 고소한 침으로 물들이던
굴비가 있었고 붉은 꽃무릇이 있었네
아아 뜨거운 가슴을 빠개어 하나의
한반도로 밀입국을 한 시인도 있었네 
땅에서는 인간이 자라고 하늘에서는
슬픔이 크는 것인가, 그 간극으로
종일 밝은 날이면 빛으로 오르내리던
깊은 사랑이 있어 영광이었으리
이웃이 내 몸이 되고 칠산바다보다
깊고 대마리의 고인돌보다 오랜 
시기와 질투를 마음으로 자르며
빛이었던 처음을 품고 
사랑이었던 나중을 더불어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의 마을에 피는 꽃이어라 남녘
그늘 아래 푸르른 꽃대 꼿꼿이 피우는
꽃술이어라 빛을 여는 말씀이어라

 

박관서, 시인, 시집 <철도원 일기>, <기차 아래 사랑법>, <광주의 푸가>, 아카이브문집 <남도문학에 스민 김현>(공저) 외 간행. 제7회 윤상원문학상, 제4회 <시와 문화> 작품상 수상.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역임, 현 문예지 <시와 사람> 편집위원,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