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23일 옥당골 영광에 첫 모습을 드러낸 본지가 오늘 창간 21돌을 맞아 주민과 독자, 광고주, 전국 경향각지의 출향인들께 뜨거운 마음으로 인사 올립니다.
<영광21>이라는 신문 이름(제호)으로 매주 독자와 주민들을 만나고 있는 본사의 올해 창간 기념호는 21주년이라 의미가 남다릅니다. 당시 신문 제호를 선정하면서 주민들이 ‘21’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쉽게 이해하고 수용하며 응원해 주셨습니다.
‘21’의 의미는 시간의 개념인 ‘21세기’를 내포하면서도 현재에 머물지 않고 ‘미래’와 ‘꿈’, ‘도전’을 지향하는 의미가 더 짙었습니다.
또 의전행사에서 총포를 쏘아 경례하는 예포의 경우에도 발사 탄수에 있어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 대통령이나 외국의 국가원수에게는 21발, 국회의장이나 총리 19발, 장관 17발 등 예우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독자와 주민들의 눈과 귀를 두려워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함께 하겠다’는 가치를 담았었습니다.
20년이 흐른 지금도 많은 분들이 ‘21신문’보다 ‘21세기 신문’이라고 불러줄 때 더 정감 있게 들리는 이유는 주민들의 일상 정서에 많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지가 미래와 꿈, 도전이라는 창간 초심을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않고 지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명쾌하게 답하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본지는 20년이라는 시간 속에 올해 1월1일 지령 1,000호 발행의 역사를 열었습니다. 지령 1,000호에서 “어둠은 밝음의 씨앗이고 절망은 희망을 위해 기꺼이 과거가 되어준다”며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각 개인과 사회생활의 피폐함에서 야기되는 생활경제의 어려움 속에서도 일상의 꿈을 되살리자는 의미와 함께 본사에게는 언론환경이 척박한 가운데서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각오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창간 초심에는 독자와 주민들에 대한 두려움과 존중이라는 의미가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1970년 11월13일 분신한 전태일 열사입니다. ‘대학생 친구’를 두는 것이 살아생전 소망 중 하나였던 그는 집이 정말 가난해 초등학교도 중퇴하고 상경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일하다 열악한 노동현실을 보게 됩니다.
노동현실을 개선하려고 근로기준법을 독학했지만 한자가 많아 내용을 알 수 없어 “대학에 다니는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었으면 알 수 있었을텐데”라고 한탄하다 22살의 나이에 분신하게 됩니다.
이후 수많은 대학생들이 그의 뜻을 따르며 노동현장에 투신하면서 학벌을 떠난 진정한 친구들을 두게 됩니다. <영광21>은 바로 어렵고 힘들 때 주민과 독자들의 벗이자 이웃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겠습니다.
창간 21돌을 맞는 오늘 <영광21>은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며 모두가 침묵할 때 굳건히 말할 수 있는 정도를 걷는데 그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본사가 창간 21돌을 맞기까지 응원으로, 때로는 질책으로 힘이 돼 주신 영광군민과 독자, 광고주, 출향인들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세환
본사 발행인 /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