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 인터넷 공모전 수상작(금상 은상)
■ 2023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 인터넷 공모전 수상작(금상 은상)
  • 영광21
  • 승인 2023.11.2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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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수탉처럼 / 손순월 

가을 상사화 밭에 오는 이는 누구나 사랑꾼이다
아내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못 해보고
까짓것 술기운이라도 빌려 볼까 하다가도
끝내 못한 벙어리 가슴으로 살아온 세월
천년쯤 품은 사랑이라면 동백처럼 굵은 근육이 붙던지  
장미처럼 가시라도 돋을만한데
어이하여 
풀피리 같은 연한 줄기로만 와서는
이파리 뒤에라도 숨는 것 없이
첫새벽 수탉의 목울대처럼 사방팔방에 대고
먹먹하게 외치는 상사화를 보여주려
불갑산으로 데려오는 것이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어이~
꽃 잘 봤는가 
이 말 밖에 못하면서


금상

할머니의 가족사랑 / 김미숙 

탈탈 털어라
쫙쫙 펴서 널어라
할머니 잔말씀까지 빨랫줄에 걸린다.

마당 한 가운데 늘어선 긴 빨랫줄
튼실한 간짓대로 중심 잡아 놓으니
온 가족의 모든 시름까지 늘어놔도 끄떡없네.

부는 바람에 날아갈까 집게로 고정하고
양말은 짝 맞춰 나란히 널라 하시네.

빨랫줄은 흐느적 흐느적 버거운데도
빨래들은 딸랑딸랑 신이 나 있고
지나는 바람은
미쳐 비누가 닿지 못한 삶의 시련까지도
토닥여주며 지나는구나.

빨래를 널며
깨끗하게 다시 시작될
내일의 새로운 가족들 모습
환한 웃음소리 들리는구나.


은상
상사화, 몰래 그린 그림 / 권준영

연아야, 너에게 오빠가 있다. 언젠가는 말해야지 했는데 지금이 그때 같구나. 그 애를 집으로 데려와야겠다.”
지난해 이맘때였을까. 아빠가 할 이야기가 있다더니 한참 동안 뜸을 들이다가 어렵게 꺼낸 말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순간 하늘이 빙 도는 것 같았다. 놀라움과 반가움 그리고 배신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사실 친구들의 오빠 이야기를 들으며 내게도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그렇지만 꿈에도 몰랐다. 이런 말을 아빠에게 진짜 듣게 될 줄은. 놀란 나를 진정시키며 아빠는 나직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빠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에서 일한 적이 있었단다. 그때 한 여학생과 연애하다 헤어졌는데 그녀가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귀국한 지 한참 뒤의 일이었지. 함께 일했던 동료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 친구가 그러더구나. 그녀가 어느 미혼모 센터에서 아들을 낳아 키우고 있다고. 당시에는 작은 무역회사에 취직해서 회사 근처 원룸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산다는 거였어. 어렵게 수소문해 거처를 찾았다. 
그런데 그때 아빠는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상태였거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엄마 몰래 모자가 세든 방에 가끔 들러 안부만 확인하곤 했었단다. 결국은 엄마에게 들키고 말았지. 너는 어려서 몰랐겠지만 그래서 나간 거야 네 엄마. 그래서 나는 네 엄마 원망도 못해.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구나. 네가 이렇게 의젓한 중학교 졸업반이 되었으니. 그런데 그 아이 엄마가 며칠전에 코로나 감염병으로 죽은 거야. 학교 담임선생님이 연락해서 알았지. 엄마를 잃은 오빠는 학교도 결석하고 혼자 원룸에만 틀어박혀 있단다.”
아빠와 단둘이 살던 집에 오빠가 들어온 뒤로 나의 세상은 아주 많이 달라졌다.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나버린 뒤로 늘 비어있던 가슴에 오빠가 들어왔다. 아침부터 밤중까지 아니 꿈에서까지 오빠는 나를 혼자 두지 않았다. 

엄마가 다른, 내 하나뿐인 오빠는 수줍고 말이 없었다. 아이돌 스타처럼 선이 곱고 윤곽이 뚜렷한 오빠는 자주 눈을 내리깔고 우수에 잠기곤 했다. 그 얼굴이 내게는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환상 속 만화영화의 주인공처럼 갑자기 나타난 오빠는 내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식탁에서는 말 한마디 없이 식사를 끝내고는 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빠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같이 보자고 불러도 대답조차 안했다. 그래서 더 그럴까? 지나칠 정도로 거리를 두는 오빠에게 나는 온 신경이 쏠렸다. 단 한번도 먼저 말을 걸어온 적 없고 웃어준 적도 없는 오빠가 엄마를 밀어내고 내 가슴을 채웠다. 
오빠가 온 뒤 아니 엄마가 떠난 뒤 몇년만에 처음으로 세 가족이 나들이를 다녀왔다. 축제 중이라는 불갑사 경내에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그보다 많은 꽃이 만발했다. 꽃무릇은 빨간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산불이 번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골짜기는 물론 도로변에까지 퍼져 있었다. 목을 길게 늘이고 긴 속눈썹을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 같았다. 아빠는 생각보다 꽃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 보였다. 
“다른 꽃들과는 달리 꽃무릇이나  상사화는 잎이 먼저 나서 진 다음에 꽃이 피거나 꽃이 지고 난 뒤에 잎이 난단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어서 상사화라는 이름으로 부른단다. 상사병이란 말도 거기서 유래되었고. 석산이라고도 부르는 꽃무릇을 일반적으로 상사화라고들 하지. 그런데 진짜 상사화는 꽃무릇하고는 좀 달라. 모양도 다르고 잎과 꽃이 피고 지는 순서와 시기도 다르지. 저쪽에 가면 상사화 군락지가 있거든. 그쪽으로 가 보자.”
제주 상사화라는 노란꽃 사진을 찍으면서 아빠는 상사화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느 스님이 도를 닦다가 순례 중인 이웃 나라 공주에게 반했더란다. 수도승이라 혼자서 속을 태웠겠지. 결국은 상사병을 앓다가 죽고 말았대. 이듬해 스님의 무덤에서 잎도 없는 꽃 한 송이가 피어나더래. 이승에서 못 이룬 스님의 사랑이 꽃 한송이로 피어난 거지. 아까 말했지? 꽃 이름의 유래랑 상사병이란 말이 왜 생겨났는지.”

가족 소풍을 다녀온 다음 날엔 웬일로 언제나 닫혀 있던 오빠 방 문짝이 살짝 열려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틈으로 살펴보았다. 오빠는 안 보이고 방안은 생각보다 어지러웠다. 널브러진 이부자리며 구겨 던진 종이들이 보였다. 치워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자기 방, 자기 빨래는 스스로 책임지자는 아빠 말이 생각나기도 했고 오빠가 왠지 싫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빠는 자기 방을 스스로 치우고 자기 옷도 자기가 빨아 입고 했었다. 
스스로 방을 정리하고 옷을 빨아 입는 것은 자립심과 책임감을 심어주기도 하지만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도 권장할 만하다고 했다. 사생활이란 말이 맘에 걸리는데도 내 궁금증과 호기심은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었다. 
오빠는 도대체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을까?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내 몸이 의지와는 달리 어느새 책상 위에 펼쳐진 그림을 향했다. 
<상사화>라는 제목의 그림은 꽃이 아니라 누군가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였다. 자기 엄마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그건 누가 보아도 사춘기를 갓 넘긴 소녀, 긴 속눈썹과 그보다 더 긴 목을 가진 나, 연아의 얼굴이었다.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졌다. 어떡해 오빠 그림 속 상사화의 주인공이 나라니. 어쩌면 좋아. 말할 수 없는 마음,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이 엄청난 비밀을.


 

은상

가족 - 아들의 입대, 휴가를 맞이하여 / 이경숙 

이웃들의 군대
삼촌들의 군대
씩씩하게만 들리더니
내 아들의 군대라니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유난히도 추위에 떨고
입맛도 평범하지 못한데
그 누가 제 입맛을 알아주랴!

휴전선이 그냥 그어놓은 선인줄 만 알다가
위태함과 두려움으로 걱정되어 두근거리는 심장
꽃피는 봄날 세월 가듯 
긴 봄날 짧아지니
충성! 벌써 휴가랍니다
안고, 보듬고, 눈물 닦기를 수십 번
야물어진 아들의 팔뚝과
다부진 몸뚱아리에서 느끼는
그 야속한 세월

아들의 휴가가 위안을 줍니다.


은상

상사화, 가슴에 담다 / 전금자

아버지, 가슴에 담은 그날  
이슬 맺힌 하늘은 
야속하게 청명하기만 했다

세월 지나 얼굴 잊혀질까
가슴에 새겨 꾹꾹 눌러보지만
그리움은 서릿발처럼 솟아나고

꿈에서라도 잡힐 듯
허공에 손짓하는 애타는 그리움
살며시 가슴을 쓰러 내립니다.
우리 어머닌 어찌 사셨을까요?
남몰래 새겼을 그리움
그리고, 십여년의 세월

가을은 소리 없이 
이 밤도 못 잊어 눈물 쏟아내고

야속하기만 한 하늘은 
여전히, 청명하기만 합니다.

 

동상

상사화와 함께 한 육남애의 하루 / 허숙희

“숙희야! 우리 법성포에 굴비 먹으러 가자”
이른 아침 머리맡에 놓여 있는 스마트폰 벨소리에 눈을 떠서 전화를 받으니 전화 목소리의 주인공은 약간 상기된 언니였다. 느닷없이 영광 법성포에 굴비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 그리고는 바로 이어 “너 안가면 다른 애들도 안 갈 걸~” 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언니는 작은 소리로 조용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함께 가기를 강하게 원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육남매의 영광 법성포 굴비한정식 먹방 여행은 남동생의 제안으로 오래전부터 계획해 온 여행이었다. 그러나 며칠 전에 여행 당일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여행을 포기했었다. 그래도 남동생은 모처럼 계획했던 여행에 미련이 있어 출발 전날 늦은 시간에 여행을 강행하자고 전화를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날씨 때문에 여자 형제들은 언니의 뜻대로 가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여행 당일 일어나 보니 구름은 잔뜩 끼어 있어도 비는 오지 않았다. 게다가 남동생이 날씨와는 관계없이 올케와 함께 출발하였다는 것을 알고 언니는 뒤늦은 후회와 아쉬움으로 마음이 변한 것이다. 그래서 여자 형제들을 비상소집 하였다. 갑작스런 소집이라 응하지 않아도 그리 미안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전화를 받으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언니의 제안을 거절하면 눈에 보이지 않게 이어 오던 육남매의 질서가 깨질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바로 쿨하게 “알았어 언니! 다른 애들은? 다 간다고 할까?” “네가 가면 아마 다 갈 걸?” 언니의 대답은 명쾌하였다.
다른 동생들도 모두 생각을 바꿔 같이 가기로 하였다. 이렇게 해서 지난 9월17일 법성포 굴비 한정식 먹방 여행을 번개처럼 떠나게 되었다. 여자 다섯명을 태운 차는 상큼한 바람을 가르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차창 밖의 숲도, 창틈으로 스며드는 내음과 바람도 완연한 가을의 시작이었다.
내려가는 도중에 먼저 떠난 남동생과 연락해 법성포의 어느 식당 앞 주차장에서 만났다. 안 온다던 누이와 동생들이 모두 뒤 따라와 만나게 되니 남동생은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영광 법성포 굴비 한상
남동생이 가려고 한 맛집은 이미 관광객으로 꽉 차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 다른 집을 찾아 갔다. 그 곳은 다행히 우리가 앉을 자리가 있었다. 굴비 한정식 3인상 두상을 시키고 자리에 앉아 먼저 온 손님 앞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면서 고소한 굴비 구이 냄새에 침을 삼켰다. 우리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서로 떨어져 살았지만 식성은 비슷하였다. 무엇이든 잘 먹고, 많이 먹으며 모두 비릿한 바다 생선을 좋아한다. 특히 담백하고 쫄깃한 굴비는 모두가 좋아 하는 생선이다. 차려진 밥상은 우리 육남매 모두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영광 굴비의 자존심인 국내산 보리굴비구이, 칼칼한 조기매운탕, 생조기 구이, 서대구이, 가자미구이, 짭조름한 간장게장, 고추장 굴비 등 한 상 가득 푸짐했다. 거기다 윤기 흐르는 돌솥 밥까지 나무랄 데 없는 임금님 수라상이었다.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은 육남매의 왕성한 식욕을 만족시켰다. 서로 맛있게 많이 먹으라고 권하며 생선뼈를 발라내고 손가락을 쪽쪽 빨며, 차려진 음식을 모두 비워 접시의 바닥을 보이게 하였다. 어릴 적 방학 때 육남매가 오랜만에 만나 빙 둘러 앉아 밥을 먹으며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라 더욱 맛있게 먹은 것 같다. 오랫동안 잊지 못할 맛이었다. 우리는 다음에 또 오자며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식당 명함을 챙겼다. 식당을 나오면서 아버지께서 강원도에서 근무하실 때 겨울방학에 찾아간 우리에게 궤짝에 꽁꽁 얼어 있는 가자미를 녹여 깨끗이 씻어 꾸덕꾸덕하게 말려서 구어 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또 떨어져 지내던 식구들이 모두 모여 밥상에 빙 둘러 앉아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을 흐뭇한 미소로 지켜보시던 아버지 모습도 떠올랐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왈칵 솟았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 하늘나라로 가신 후에도 육남매가 모두 모여 이렇게 정답게 떠들고 웃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니, 행복해 하실거라는 생각을 하며 맑고 푸른 법성포의 가을 하늘을 올려 다 보았다. 
 
법성포 찍고 불갑산 상사화 축제장으로
식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남동생이 밥만 먹고 갈 수는 없다고 불갑사 상사화 축제장에 가자고 제안했다. 아마도 동생은 애초부터 여행 일정에 상사화 축제가 계획돼 있었던 것 같았다. 
9월 15일부터 24일까지 불갑산에서 상사화축제가 열린다는 동생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아니 지금이 상사화 축제 중이라고?”
상사화가 조금씩 피어 있는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330만㎡ 넓은 부지에 피어 있는 상사화 꽃밭에서 한번 걸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집으로 가려던 발길을 돌려 올해로 스물세 번째를 맞이하는 상사화 축제장으로 향했다. 축제장은 명성만큼이나 꽃 반, 사람 반 인파가 대단했다. 축제장 입구인 일주문을 지나 마치 붉은 주단을 깔아 놓은 듯한 붉게 물든 상사화 꽃길을 걸었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란 꽃말과 ‘탑돌이 하던 어여쁜 아가씨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연모의 정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둔 수발승의 무덤가에 피어났다는 화엽불견초인 상사화’에 얽힌 슬픈 전설이 떠올랐다. 붉게 피어 있는 상사화의 매력에 마치 천년의 사랑 속으로 빠져 드는 듯 했다.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장을 여러 곳 다녀 보았지만 이렇게 황홀하게 아름다운 곳은 이곳 불갑산 상사화 축제장이 으뜸인 것 같다. 우리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상사화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상사화 꽃길을 걸었다. 그리고 꽃길 속에 피어나는 소중한 추억을 사진에 담느라 바빴다. 앞으로 우리의 앞길이 이렇게 아름다운 꽃길이기를 바라며 주변에 준비된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즐겼다. 사찰 중에 갑이라는 불갑사에 들려 기와에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글을 쓰고 절을 내려와 행사장을 벗어났다. 내려오는 길에 입장료만큼 돌려받은 상품권으로 영광 모시송편도 사 먹고, 고향집 뜰에 심으려고 상사화 구근도 샀다. 꽃길을 걸으며 찍은 사진을 무료로 두 장씩 인화하고 막 행사장을 빠져 나오려는데 길 한편에서 할머니가 팔고 계시는 간장에 절인 무장아찌가 눈에 띄었다. 
우리는 동시에 걸음을 멈추고 “와~ 우리 엄마가 좋아하시던 무장아찌네~” 하고 소리를 쳤다.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된 이후 아마도 이 때쯤이었을 것 같다. 어머니는 시장에 가시면 무장아찌를 사 가지고 오셔서 깨소금과 참기름에 조물조물 버무려 상에 올리기도 하고 도시락 반찬으로 자주 싸 주시던 그 무장아찌가 아닌가? 언니는 아무 말 없이 망설이지 않고 무장아찌를 한 보따리 사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마도 생전에 엄마를 생각하며 엄마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주어 주고 싶어 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부모님 돌아가신 이후 모처럼 우리 육남매는 마음이 모아져 영광 법성포 굴비한정식을 먹고 불갑산상사화 축제장에서 아름다운 상사화 꽃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내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늘 꿈 많은 소녀처럼 꽃을 유난히 좋아하셨던 어머니! 언제나 인자한 모습으로 웃음 지으시던 아버지! 어머니께서 제일 좋아하시던 진홍색으로 붉게 물든 불갑사의 아름다운 상사화 꽃길을 걸으셨다면 어떤 모습이셨을까? 아마도 어머니는 우리보다 더 소녀 같은 표정으로 행복해하셨고, 아버지는 아버지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로 우리를 지켜보셨을 것이다.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실거라 생각하며 바쁘다는 이유로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갖지 못 했던 것이 너무도 후회스러웠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낳아 주신 우리 부모님. 살아 계실 때 건네지 못한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상사화 꽃이 붉게 물든 불갑산에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전하고 싶었다. “아버지! 어머니!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남동생은 노란색 상사화도 보았다고 자랑을 하는 데 나는 보지 못했다. 정말 노란색 상사화가 있을까? 올해 보지 못한 노란 상사화를 찾으러 내년에 있을 스물네번째 불갑산 상사화 축제에 또 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