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재단 자체 지정 영광 유적지 3곳 있지만 …
기념재단 자체 지정 영광 유적지 3곳 있지만 …
  • 영광21
  • 승인 2024.06.0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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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광주유적지 85곳 중 장흥·무안·화순군 이외 방치 상태
▲ 영광읍성 남문과 누정 / 1910년 (출처 : 영광군지) 

 

■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잊혀진 영광지역 유적지

올해로 130주년을 맞은 동학농민혁명, 영광군에도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매우 드물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15년이란 세월이 흘러 2019년 동학군이 관군을 상대로 첫승을 거둔 황토현전투(5월11일)를 기념해 국가제정 기념일로 제정됐다. 그러나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며 수많은 동학군의 처형이 이뤄졌지만 지역내 유적지는 제대로 된 관리가 전무한 상황이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자료에 따르면 전남·광주지역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는 총 85곳이며 영광에도 3곳이 있다. 
이중 국가사적지는 장성 황룡강 전적지와 장흥 석대들 전적지 2곳뿐이고 나머지는 기념재단이 2010년, 2019년 2차례 현지조사와 사료분석을 통해 자체 지정한 유적지다.
기념재단이 지정한 영광지역 유적지로는 농민혁명이 시작되기 수일전 혁명을 논의하며 죽창 등의 무기를 제작했던 곳으로 알려진 법성면 용덕리 용현마을, 동학농민군이 점령한 영광읍의 영광관아와 법성면 진내리 일대 등 3곳이다. 
이외에도 1894년 11월 이후 관군과 일본군의 진압작전으로 동학농민군이 전투중 사망후 그 시체를 찾지 못하게 일본군이 영광읍 신하리에 있는 옛 가축시장 인근에 무더기로 집단화장해 버린 곳도 있다. 이곳에서는 30여년 전만 해도 땅을 파면 불에 타버린 유골이 간혹 나왔다고 70~80대 어르신들은 기억하고 있다.  
현재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는 지자체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유적지가 없는 신안군·완도군을 제외한 20개 전남 시·군 중에서 무안군·화순군·장흥군만이 기념탑과 표지석 등을 통해 기리고 있을 뿐이다. 
이들 관련 유적지에 표지석만이라도 먼저 세워 역사의 발자취를 남기자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 법성면 동학농민군 무기 제작지

▶ 주소 : 법성면 용덕리 149번지(용현마을 인근 대숲)
▶ 정의 : 무장기포 당시 동학농민군의 죽창 제작터
▶ 분류 : 모의지
 <관련 역사적 사실>
1894년 3월16일 무렵부터 전라도 일대의 동학농민군들은 고창군 무장 일대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최초에는 100여명에 불과했지만 3월16일에서 18일까지 전라도 각지에서 동학농민군이 사방에서 집결해 1,000여명에 이르기까지 했다. 이들 동학농민군 가운데 일부는 법성포 진량면 용현리에 위치한 대나무 숲에서 죽창을 만들고 민가에서 조총을 비롯한 호미, 낫, 삽 등을 빼앗아 무장했다.

 

 

2. 법성진 동학농민군 점령지

▶ 주소 : 법성면 진내리 28-1번지 일대(법성진성)
▶ 정의 : 무장기포 후 동학농민군이 점령했던 곳
▶ 분류 : 전투지
 <관련 역사적 사실>
1894년 3월20일 전북 무장에서 기포한 동학농민군의 주력부대는 고창, 흥덕, 고부, 금구, 태  인, 정읍 등을 거쳐 4월12일에 영광에 도착했다. 4월12일 세곡을 한양으로 보내기 위해 법성포에 나가있던 군수 민영수는 동학농민군이 영광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칠산바다로 도주했다. 
법성에 도착한 동학농민군은 군기고에 불을 질러 무기를 탈취하고 돈과 곡식, 말 등을 빼앗았다. 동학농민군 중 일부는 4월14일 법성 구수포로 가서 한양호를 공격해 조선인 전운국과 김용덕, 일본인 다나카 등 3명, 총 6명을 체포했다. 1894년 기준 법성포에는 조창이 있었고 전라도의 세곡을 경창으로 운반하기 위해 선박의 출입이 잦았던 곳이다. 
동학농민군이 법성을 공격한 것은 군량미 확보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일본상인들이 법성포에 들어와 일본에서 가져온 잡화류를 비싸게 팔고 있었기 때문에 동학농민군의 공격대상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동학농민군은 법성진성과 법성포 조창 등지를 공격해 주둔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3. 동학농민군 영광관아 점령지

▶ 주소 : 영광읍 중앙로 203(영광군청)
▶ 정의 : 무장기포후 동학농민군의 점령지
▶ 분류 : 점령지
 <관련 역사적 사실>
1894년 3월20일 무장에서 1차 기포 후 동학농민군 주력부대는 고창, 흥덕, 고부, 금구, 태인, 정읍 등을 거쳐 4월12일 오전 영광에 진입했다. 이때 농민군의 수는 1만여명에 이르렀다.
동학농민군들은 영광관아를 점령하고 4일간 머물러 있었는데, 낮에는 진법을 훈련하고 밤에는 경전을 읽은 것으로 파악된다. 또 관아를 점령한 동학농민군들은 짚을 모아 흙으로 성을 보수했으며, 운반해온 곡식을 비축하기도 했다. 
영광에 주둔하던 동학농민군의 수는 날로 증가해 무장에서 1차 기포 당시의 3배인 약 1만2,000~1만4,000명이 집결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