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세 순국 정부 1990년 건국훈장 추서했지만 영광군은 …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죄’
1919년 3월13일, 전주의 만세시위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종교계, 일반인, 기생들까지 수많은 사람이 참여하였다.
경찰과 헌병은 일제히 총을 쏘았고, 소방대원들을 동원하여 물을 끼얹으며 무력진압을 시도했다. 시위자들은 붙들려 두들겨 맞았고, 만세를 부르다가 소방대의 갈고리에 찍혔다. 한 여학생은 헌병에 붙잡혀 땅에 내동댕이쳐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그런데도 만세운동은 다음날까지 이어 갔다. 이렇듯 치열했던 전주 3·1운동의 주동자 가운데에는 법성포에서 유학 온 두 학생이 있었다. 바로 법성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8년 전주 신흥학교 고등과에 입학한 남궁현과 고형진이다.
남궁현과 고형진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채소 부대로 위장한 가마니 속에 넣어 운반하여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고 행진을 주도하였다.
남궁현은 개화기에 지금의 법성포초등학교 모태인 법성포보통학교 설립을 주도하며 학교 운영을 전담했던 남궁시삼의 장손이고, 고형진은 조선시대 법성진 파총(종4품)이었던 고시은의 둘째 아들이자 일제강점기 영광 청년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고송 고경진의 친동생이다.
이들은 전주 3·1만세운동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1년형을 받고 즉시 항고했다. 그 항고이유서에는 “5천년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우리 혼이 어찌 너희 일본의 대화혼大和魂에 동화될 수 있다고 보는가? (중략)빼앗기는 조국과 짓밟히는 민족을 구하려는 피맺힌 항쟁이 어찌하여 죄가 되는가”라고 쓰여 있다.

굴비 팔아 독립지사 가족 도우려다 또…
형기를 마친 남궁현은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진학하여 학업을 마치고 귀향하여 법성포청년회를 이끌며 영광 청년운동을 주도하다 또다시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18살에 전주 3·1운동을 주도하여 전주교도소에서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고, 서른 나이에 신간회 영광지부 창립과 사회주의운동을 한 죄(?)로 두 번째 겪는 옥고였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갇혀있으면서 독립운동을 한 죄로 투옥된 독립지사의 참상을 직접 본 남궁현은 출옥하면 반드시 이들의 가족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
조선의 명산名産으로 널리 알려진 영광굴비를 팔아 이들을 돕기로 했다. 이 일로 남궁현은 또다시 2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일본의 국체를 변혁하고 조선을 일본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라고 잡아 가뒀다.
당시 법원의 판결문에는 “피고 남궁현은~ 피고 김창환의 집으로 찾아가 ‘우리가 조선을 독립시키기 위해서는 선혈 유족들의 구원사업이 필요하다. 내가 사는 법성포는 영광굴비로 유명한데, 이 굴비를 팔아 이들을 돕자. 굴비는 조기를 석 달여 동안 햇빛에 말려 가공하는데, 햇빛 대신 대형 전기선풍기로 조기를 말리면 가공기간이 대략 1주일로 단축되어 굴비를 많이 만들 수 있다. 이렇게 굴비를 만들어 팔면 연간 천여원의 순이익을 올릴 수 있다. 이 이익금을 구원사업에 쓰자’라고 하니 창환은 그리 하자 하였다”라는 요지로 기록되어 있다.
영광의 인물 축에는 끼지도 못해서야

이렇게 세번째 옥살이를 하고 1년 8개월 후, 남궁현은 또다시 옥에 갇혔다. 일제는 영광의 최대 옥사인 소위 <영광체육단사건>을 만들어 2년 2개월 동안 옥에 가뒀다.
그리고 풀려난 지 5개월여 지난 1940년 4월에 옥고의 여독으로 꿈에 그리던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향년 39세에 유명을 달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12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국가보훈처는 2001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2019년 3월에는 전주시가 선정한 <전주 독립운동가 58인> 가운데 한사람이 되었다.
남궁현은 현재 국립대전현충원 <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어 국가에서 돌보고 있다. 그러나 영광군 누리집(문화관광)의 <근현대 영광군 인물사, 영광의 인물> 책자에는 남궁현, 이름 석자가 보이지 않는다.
조국 광복을 위해 4차례에 걸쳐 6년 8개월 동안 모진 고문을 받고, 지긋지긋한 감옥을 제집 드나들 듯하며 항일전선에 앞장서 젊음을 송두리째 나라에 바친 애국지사를 영광군은 외면하고 홀대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법성면번영회는 현충시설로 지정돼 있는 인의산 충혼비와 백인기 지사 충용비를 찾아 추모행사를 하였다. 또 지난 3월부터 법성포 진내리 일원에 <법성포 3·1운동 기념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내년 6월은 애국지사 남궁현 선생의 탄신 114주년이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사회단체라도 앞장서 남궁현 선생의 생가에 해설 표지판이라도 세워 2025년 제70회 현충일을 맞이하자.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 성경에 있는 말이다.
김범진 / 고문
법성문화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