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광불갑산상사회축제 기념 인터넷 공모전 금상 수상작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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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광21
  • 승인 2024.10.3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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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탈색된 붉은 상사화의 사랑 
김순봉  / 광주광역시 북구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 꽃이 어떤 꽃이냐에 따라 각기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꽃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역시 꽃 중의 꽃은 빨간 장미꽃이라고 생각하며 좋아한다. 
울 엄마는 시골 장독대 옆 군락으로 하얗게 피어 있는 백합을 좋아하셨고 코를 백합꽃에 대시면서 향기를 들이마시며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와! 참 좋다! 그런데, 백합 향기에 너무 오래 취해 있으면 그만 잠이 들어 죽을 수도 있단다.”그때 엄마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 
작년에는 딸, 손자, 아내랑 함께 영광 불갑산상사화축제에 갔었는데, 올해는 아내랑 둘이서만 갔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온갖 차들은 주차장을 가득 채우고 넘쳐 빈 곳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형형색색 사람과 차들이 어우러져 북새통을 이루었고 붉은 상사화는 누리에 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이 가을에 이렇게 산야를 붉게 물들인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우리의 가슴은 붉게 불타오르기 시작하였다. 666년이나 되는 당산나무 세 그루가 있는 삼정자三亭子에 다다라 아내가 물었다.
“이 붉은 꽃은 어이 이렇게도 이곳에 많데요? 당신이 잘 아는 꽃말은 또 뭐고요?”
“음, 그러게요. 상사화가 굉장히 많죠. 아마 이곳 불갑사는 상사화가 잘 자랄 수 있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어 성盛하기도 하지만 축제를 위해 영광군에서 인위적으로 상사화를 심고 가꾸기도 하였을 거여요. 그리고 꽃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래요.”
“어째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하였을까요?”
“음, 그건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어서 그런 것일 거여요. 오뉴월에 상사화는 잎이 무성하리만큼 푸르게 올라와 잎이 지고 나면 10월 무렵 촛대가 솟아올라 꽃을 피우게 되죠. 그래서 잎은 다 사라진 후 꽃이 펴 절대로 잎과 꽃이 함께 할 수 없어 그렇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이 생긴 거래요.” 이어 상사화에 얽힌 전설도 이야기해 주었다. 이렇게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갑사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계속 거닐어 저수지까지 걸어 올라갔다. 저수지에는 잉어, 송사리, 가물치들이 유유자적 유영遊泳하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저수지에 저렇게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것이 바로 생명 존중의 불심佛心이 아닐까?

점심시간이 지났다. 배꼽시계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며 점심을 먹으라고 재촉하였다. 저수지 옆 벤치에 앉아 쉬면서 아내는 자꾸 묻는다. 
“당신이 말한 대로 참으로 안타깝고 서글픈 사랑의 꽃이 바로 이 상사화네요. 아마 이 꽃처럼 우리 사랑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면 정말 어땠을까요?”
“당신은 참 지혜로운 여자라서 날 놓치지 않고 꼭 붙잡았죠. 그렇죠?”
“맞아요. 그때 당신이 그렇게 하지만 않았어도 우리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걸요.”
사실 그랬을 거다. 스물여섯이었던 나는 아내와 첫선을 보았었다. 아내는 메마른 체구이지만 눈동자가 초롱초롱 살아 있었다. 그러나 그날 차를 한잔하고 우리는 헤어져 서로 맘에 들지 않아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보름이 지나 그 동네 친구한테 들었다. 우리 1년 후배인데 정말 살림을 잘하고 머리가 영리한 여자로 여 상고를 졸업하였다는 거였다. 사실 나는 거기에 혹하여 연락하여 점심을 먹고 시간이 있어 탁구장으로 갔다. 나는 탁구를 조금 쳤다. 아내도 나에 못지않게 탁구를 잘 쳤다. 
그러나 나는 아내가 탁구를 치면 그 공을 받아 탁탁 올려 상대편 탁구대 오른쪽에 떨어뜨려 주었다. 그러면 아내는 다시 힘껏 ‘탁!’치면 나도 모르게 탁 받아 올려 그곳에 정확히 떨어뜨려 준다. 치기에 딱 좋게 말이다. 
이러기를 수십 번 반복하였다. 결국, 나는 지고 말았고 아내는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며 함박꽃처럼 활짝 웃었다.
“당신 그때 알아요. 탁구장에서 탁구 칠 때, 당신이 치기 쉽게 내 쪽 오른편 탁구대에 탁탁 올려주더라고요. 그게 너무 멋져 보였어요. 바로 그때 뿅 가고 말았죠.”

나는 그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사랑의 인연을 알고 상사화의 비밀을 보니 화려한 붉음보다는 오히려 처량하고 싸늘한 상사화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내가 더 곱고 지혜로워 보였다. 붉은 사랑의 마음보다는 순수한 순애보 같은 사랑이 빚은 배려는 결국 부부라는 꽃으로 피울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할매 보리밥집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는 길에 플래카드가 펄렁거렸다. 눈길을 끈다. 거기에는 각종 홍보 내용과 상사화에 대한 시와 글들이 서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영광 출신의 정형택 시인의 시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상사화 3>이라는 시 앞에 서서 시를 읊는다.
『아니 올 줄 뻔히 알면서도/기다려 보는 일/사랑이 아니런가// 만에 하나/오시기라도 한다치면/기다림 없이 돌아선 사랑/어찌할거나, 어찌할거나// 기다림도 사랑이 된다면/내 이 자리/천년토록 기다리리라//』

기다림과 안타까움으로 사랑의 간절함을 담은 시이지만 나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지금의 사랑을 지키며 노후의 삶을 행복으로 붉게 물들이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노인복지관 한글 교실반 회원들의 시처럼 그렇게 행복의 꽃이 상사화로 피웠으면 하는 맘이었다. 노인들이 배우고 익혀 한글을 깨우쳐 시를 썼을 때, 그 기쁨은 얼마나 컸겠는가! 어느 한 할머니의 시다.
어머니 나도 글 읽어요.
한 자 한 자 알아가니/소망도 함께 따라옵니다/건강한 오늘이 감사하고요//고생만 하시다가 떠나가신 어머니/천국에서 편하실까/내 어릴 적 동생 업고 일할 때/그 어려움도 어머니는 알지요/날마다 그런 일만하다가// 학교는 꿈이었고/글자는 상상의 이야기였지요/오늘 글씨를 쓰고 읽으면서/하도나 대견해서/어머니를 불러봅니다/어머니 나도 글씨 읽고 써요/이렇게 글도 지었지요//
울 엄마는 띄엄띄엄 글을 읽으시기도 하셨다. 한글을 갓 읽은 어린아이 같았다. 청상과부로 살아오면서 평생 시골 농사일밖에 모르셨던 어머니, 엄마랑 함께 살면서 중학교에 다닐 때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도서관에서 구운몽, 장화홍련전, 조웅전, 채봉감별곡 등 고전소설 책을 빌려와 전기수가 되어 엄마에게 맛나게 읽어주었다. 

새록새록 주무셨던 어머니, 그 어머니는 장독대 옆 백합꽃 향기에 취해 지금 이 땅 어디에도 없으시다. 이 시를 읽고 나도 모르게 나의 엄마를 생각하니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다. 
시대가 발 빠르게 변화되어 혼돈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여기에 기혼자는 하룻밤 풋사랑(One night)으로 바람을 피우는 일도 흔해졌다고 본다. 정상적인 사랑이 아닌 어긋나고 삐뚤어진 사랑일 것이다. 바로 불륜不倫이다. 
또한, 결혼 후 살다가도 가치관, 성격 차이로 가차 없이 이혼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나는 이런 사랑과 이별을 ‘탈색된 붉은 상사화의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상사화의 잎과 꽃처럼 서로 만날 수 없는 사랑이라고 말이다. 그래야만 이들은 가슴만 옹졸이며 만나지 못할 극치를 맛보아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상사화의 사랑을 슬프고 애 닳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이 시대를 부유浮遊할 부적절하고 불륜적 사랑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하는 바람으로 온 누리에 이토록 상사화가 붉게 피어 보는 이들에게 일침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