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과 여색을 탐하면 재산을 몰수하고 일족을 없앴다”
“재물과 여색을 탐하면 재산을 몰수하고 일족을 없앴다”
  • 영광21
  • 승인 2025.02.0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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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형으로 더 치밀해진 탐관현상

■ 김영수 교수의 ‘Back to the Future’ 탐관오리 열전 ③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친 현대판 탐관오리하면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1936~2023)를 꼽는 사람이 많다. 기업인 출신인 그는 정치권력까지 차지하여 총리를 세차례나 지냈다. 
그는 정치권력(총리)+경제권력(재벌)+언론권력(최대의 언론기업 소유주)을 장악하여 유례없는 막강한 권력을 마음껏 휘둘렀다. 수많은 부정부패, 반대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및 여성편력 스캔들로 점철된 인물임에도 세차례 총리 역임에 성공하며 도합 약 9년간 집권했다. 

이는 개인으로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기 집권 기록이었다. 
집권 기간 내내 부정과 부패가 끊이질 않았고 심지어 마피아와도 손을 잡고 무자비한 통치를 서슴지 않았다. 이 희대의 탐관오리 한 사람 때문에 한때 세계 GDP 5위를 기록했던 이탈리아의 경제는 곤두박질했고 단숨에 후진국으로 떨어졌다. 
베를루스코니는 역사상 탐관의 전형적인 특징인 ‘탐권貪權’, ‘탐위貪位’, ‘탐재貪財’, ‘탐색貪色’을 그 누구보다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렇듯 탐관현상은 그저 지나간 과거사가 결코 아니다. 
현재 진행형일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과거보다 더 심각하다. 탐행의 수법이 더욱 치밀해졌고 또 전방위적이기 때문이다.

은상 시기, 탐관은 임용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3,600여년 전인 기원전 17세기 무렵 건국된 상(또는 은상) 왕조는 건국 초기 지난 역사의 경험과 교훈을 종합하여 탐관에게 채찍질과 매질을 한다는 형벌을 계승하는 한편 관리를 전문적으로 처벌하는 《관형官刑》을 제정했다. 
《상서》 <이훈伊訓> 편에는 “상탕은 관리를 다스리는 형법을 제정하여 백관에게 경계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같은 편에는 또 “재물과 여색을 탐하고 사냥에 탐닉하는 관리는 반드시 집안 재산을 몰수하고 일족을 없앤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는 당시 관리에 대한 다스림을 중시했을 뿐만 아니라 탐관에 대한 징벌도 대단히 엄중했음을 뜻한다.
상 왕조는 대략 기원전 14세기 반경盤庚 때 오면 탐관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반경은 과거 역사의 교훈을 종합하여 신하에게 “그대들은 사심을 제거하여 오만방자하게 굴지 말고 탐욕을 부리며 안일하게 살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했다.(《상서》 <반경>) 
반경은 또 형법을 수정하여 탐관을 엄격하게 징벌했다. 반경은 “지금 정치를 어지럽히는 대신들이 나와 똑 같이 대권을 장악하여 그저 재물만 탐을 낸다. 내가 ‘비형丕刑’을 제정해 너희들을 처벌하겠다”고 했다. 

탐관을 공적에 기용하지 않겠다는 의즈릴 분명히 한 반경
탐관을 공적에 기용하지 않겠다는 의즈릴 분명히 한 반경

 

이대목은 재물만 탐내는 탐관들이 또 등장함으로써 반경이 ‘비형’을 제정해 이들을 제약하고 처벌했음을 말하고 있다. 
얼마 뒤 반경은 또 자신의 관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나는 재물을 탐하고 긁어모으는 자를 임용하지 않겠다. 인민을 위해 노력하고, 법으로 신하와 인민을 안정시키려는 사람이라면 공의 크기에 따라 모두 임용하겠다.”
반경의 이 선언은 인재를 기용하는 원칙의 중대한 발전을 반영하며, 재물을 탐하는 자를 관리로 임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제도적으로 탐욕을 막고 탐관을 내치겠다는 정신의 반영이었다. 
이는 역으로 반경 통치기에 재물을 탐하고 긁어모으는 관료들의 현상이 비교적 심각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노예주 통치의 근본적 이익이 날카롭게 충돌하여 통치자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고 이것이 탐관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이어졌다.

서주 시기, 탐관 징벌하는 구체적인 법 출현 
형법은 계급대항의 산물이자 정치와 경제발전의 수준에 상응하는 산물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치와 경제가 필요로 하는 요구와 긴밀하게 연계될 수밖에 없다. 
통치자는 이런 실질적 필요성에 근거하여 법을 만든다. 달리 말해 법 또한 역사적 실제에 반응하는 것이다.
서주 시기(기원전 1046~기원전 770)에 정치·사회·경제는 한걸음 더 발전하여 각종 관료기구가 이미 갖추어졌다. 이런 발전에 따른 요구에 적응하기 위해 통치계급은 형법을 다시 수정했다. 이 형법에는 새로운 특징이 나타났는데, 특히 탐욕을 징계하는 정신이 형법에 체현되기 시작하여 탐관을 징벌하는 전문 조항이 생겼다.

 

주 목왕 때 오면 탐관의 처벌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법 조항들이 마련되었다.
주 목왕 때 오면 탐관의 처벌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법 조항들이 마련되었다.

 

주나라 목왕(穆王, 재위 기원전 976~기원전 922년/재위 55년) 때 보후(甫侯, 여후呂侯로도 부름)는 하·상 시기 《하형》 중의 《속형贖刑》을 기초로 하여 다시 《여형呂刑》을 제정했다. 
《여형》의 내용은 대단히 풍부한데 그 중 ‘오형五刑’, ‘오벌五罰’, ‘오과五過’, ‘오자五疵’ 네부분이 주를 이룬다. 
그 중 ‘오형’ 조형 조항만 무려 3천에 이른다. 탐관과 관련하여 특히 주목할 것은 ‘오자’이다. 
‘오자’는 다섯 종류의 폐단이고 이에 대한 처벌법을 ‘오자법’이라 부를 수 있다. 이 법 조항들은 통치계급 내부의 관리들을 제약하고 처벌하는 형법이다. 그리고 각 항목에는 탐관들이 저지르는 수법의 내용이 딸려 있다.
1) 유관惟官: 윗사람의 뜻을 빙자하고 권세에 의지하는 짓 2) 유반惟反: 직권을 이용하여 사사로운 은혜와 원한을 갚는 짓 3) 유내惟內: 가까운 사람을 이용하여 일을 처리하고 몰래 견제하는 짓 4) 유화惟貨: 뇌물을 받고 속임수 등으로 재물 따위를 긁어내는 짓 5) 유래惟來: 청탁을 받고 사사로이 법을 어기고 왜곡하는 짓
이 조항에는 또 이 다섯 가지 정황이 나타나면 범인으로 단정하여 죄를 묻는다고 되어 있다. ‘오자법’은 주 왕조 사법체계의 어두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중 4, 5조항의 뇌물과 청탁 부분은 당시 관료판과 사법에서 법을 어기면서 재물, 뇌물, 청탁 따위를 저지르는 풍조를 말한다. 

물론 이 두 조항은 앞의 세 조항과도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 때문에 ‘오자법’을 만들어 징벌하겠다는 것이었다. 
‘오자법’은 실제로는 탐관에 대한 징벌법으로서 탐욕 때문에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의 배를 불리는 범법자들에 대한 통제이자 타격이었다. 요·순 이래 탐관에 대한 징계와 징벌은 이렇듯 끊임없이 이어지며 점차 전문적인 법조문으로 모양을 갖춰갔다. 
이는 역으로 탐관에 대한 징벌이 엄중하면 할수록 탐관이 점차 많아졌고 탐관의 활동도 갈수록 창궐하여 엄벌이 아니면 다스릴 수 없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김영수 교수
(사)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