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관의 물욕과 재색 앞에서는 국가의 흥망성쇠도 뒷전
탐관의 물욕과 재색 앞에서는 국가의 흥망성쇠도 뒷전
  • 영광21
  • 승인 2025.04.1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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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과 미녀가 연출한 망국의 원흉 탐관오리 백비 ②

김영수의 ‘Back to the Future’ 탐관오리 열전 ⑧

기원전 496년 오왕 합려는 월나라의 국군 윤상允常이 죽은 국상을 틈타 월나라를 공격했다. 윤상에 이어 즉위한 월왕 구천은 즉위하자마자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구천은 사형수들로 이루어진 결사대를 이용하여 오나라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사형수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목을 베게 했다. 죄수들의 목에서는 검붉은 피가 솟구치듯 뿜어져 나왔고, 오나라 군대는 예기치 못한 급작스러운 상황에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오나라 군대가 혼란에 빠진 것을 확인한 구천은 돌격대를 보내 맹공을 가했고, 막강한 오나라 군대는 대패했다. 더욱이 이 전투의 와중에서 오왕 합려는 발가락에 부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합려는 죽기 전에 아들 부차에게 복수를 신신당부했다. 이것이 오·월 간에 벌어진 본격적인 충돌로 역사에서는 ‘취리전투’라 부른다. 오나라는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가 왕위를 이어받아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합려의 뒤를 이은 부차는 자질이 떨어지는 리더였다. 백비는 그 틈을 파고 들었다.

 

차려진 밥상, 드러나는 탐욕
합려가 불의에 죽긴 했지만 전력이 막강한 오나라가 쉽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국상을 치르고 전력을 가다듬은 부차는 기원전 494년 아버지 합려의 한을 갚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 
부차는 오자서를 대장에, 백비를 부장에 임명하여 태호의 물길을 따라 월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월은 막강한 오의 군대를 당해내지 못하고 대패했고, 구천은 겨우 5천의 병사만 남긴 채 회계산會稽山에 갇혔고, 월은 멸망의 문턱을 오르내리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월나라 대부 문종이 나서 다음과 같은 대책을 건의했다.
“오나라 태재太宰(이 당시 백비는 대부에서 태재로 승진해 있었다) 백비라는 자는 재물과 여색을 무척이나 탐내는 자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의 능력과 공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성격이라 오자서와 함께 일을 하고는 있지만 뜻이나 취향은 같지 않습니다. 게다가 즉위한 지 얼마 안 되는 오왕 부차는 아직 젊어서인지 아버지 합려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았던 중신 오자서에 대해 겉으로는 두려워하며 섬기고 있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자신의 말에 고분고분한 백비를 은근히 가까이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을 백비의 군영으로 보내 재물과 여색으로 환심을 사고 화의를 요청하면 무슨 수가 생길 수 있을 겁니다.”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구천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문종의 건의를 받아들여 바로 도성으로 사람을 보내 8명의 미녀와 온갖 금은보화를 모으도록 했다. 백비에게로 가는 일은 문종이 직접 맡았다.
문종은 가지고 온 각종 예물을 백비에게 바치면서 “이것들은 저희 군주께서 태재께 드리는 보잘 것 없는 성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태재께서 화의를 위해 힘을 써주신다면 끊임없이 성의를 보일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푸짐에 금은보화에 장사도 무너뜨려
푸짐한 예물에 기분이 좋아진 백비는 짐짓 무게를 잡으면서 “월나라의 멸망이 오늘 내일이면 결정나고, 그때 가면 월나라의 재부가 모조리 우리 오나라 것이 될 판인데 내가 이 정도 예물에 눈 하나 꿈쩍할 것 같은가? 당장 가지고 돌아가게!”라며 큰소리를 쳤다.
백비의 밥통이 여간 아님을 직감한 문종은 강공과 회유를 섞어가며 다음과 같은 이해관계로 백비를 구슬렸다. 
“태재께서 화의를 위해 힘을 써서 일이 성사된다면 저희 군주는 표면적으로는 오왕께 굴복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태재께 굴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오나라에 바칠 공물들은 왕궁에 들어가지 전에 태재부로 먼저 들어갈 것이니 태재께서 월나라의 공물을 독차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자서는 백비의 위험성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백비의 세력이 통제불능까지 커졌기 때문이다.
오자서는 백비의 위험성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백비의 세력이 통제불능까지 커졌기 때문이다.

 

문종은 백비의 마음 속 깊은 곳을 건드렸다. 그리고는 다시 “여기 이 여덟명의 여자들은 모두 월나라 궁에서 선발된 미녀들입니다. 저희 군주께서 살아 회궁하시면 민간에서 더 많은 미녀들을 골라 태재께 바칠 것입니다”라며 또 한장의 회심의 카드를 날렸다. 
문종의 분석에서 보다시피 이 당시 백비는 이미 재물과 여자를 밝히 탐욕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월나라는 백비의 성품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이는 평소 어떤 형태로든 월나라가 백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월나라는 백비라는 오나라 최대의 허점을 정확하게 파고들었고, 재물과 여색의 유혹에 홀딱 넘어간 백비는 양국의 화의를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월나라의 대변인이기라도 한 것처럼.
문종을 만난, 아니 월나라의 뇌물을 받은 다음 날 백비는 당장 부차에게로 달려가 월나라에서 항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며 공격보다는 화의가 득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부차는 두 나라가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원수라며 화를 냈다. 

재물과 여색의 유혹, 교활한 언사
백비는 ‘무력이란 흉기와 같아 잠깐은사용할 수 있지만 오래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손무의 말까지 인용해가며 부차를 설득했다. 
여기에 월나라의 풍요로운 재부와 미녀들까지 거론해가며 부차를 노골적으로 유혹했다. 
또 전날 문종이 오나라가 기어코 월나라를 공격한다면 모든 것을 불태우고 옥쇄하겠다는 말도 전했다.
한바탕 백비의 현란한 설득에 부차의 태도는 당초와는 180도 바뀌어 월나라의 화의 요청을 받아들이게 했다. 오자서와 손무의 피를 토하는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자서에 대한 아버지 합려와 아들 부차의 체감 온도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치 건너라는 말도 있듯이, 생사를 걸고 동고동락했던 합려와 오자서의 관계를 부차 또한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기대했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 아니겠는가? 
월나라는 국왕 구천이 부인과 문종을 대동하고 오나라에 들어와 오왕 부차를 직접 시중드는 성의를 보였고, 3년 뒤 부차는 구천 일행을 월나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그 사이 백비는 구천의 대변인은 물론 구천 일행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매년 엄청난 양의 재물과 미녀들이 백비의 집으로 수송되었고, 백비는 자신의 부와 권력을 이용하여 조정 곳곳에 패거리들을 심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구천을 귀국시킨다는 소식을 들은 오자서는 황급히 달려와 이를 말렸다. 부차는 순간 마음이 흔들려 구천의 귀국을 취소하고 구천을 죽이려 했으나 때마침 병이 나는 바람에 명령이 바로 집행되지 못했다. 
이를 틈타 백비는 재빨리 병이 났을 때 사람을 죽이는 일은 상서롭지 못하니 병이 나은 다음 시행해도 늦지 않다며 부차를 설득하는 한편, 구천에게 직접 부차의 병간호를 하게 했다. 

오자서, 뒤늦은 통한의 후회
구천은 부차의 병세를 살핀 다음 그의 똥을 직접 맛보고는 조만간 병세가 호전될 것이라고 위로하는 등 극진히 시중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차의 병세는 얼마 뒤 호전되기 시작했고 구천의 시중에 감격한 부차는 결국 구천을 귀국시켰다.
오자서는 가슴을 치며 통탄했다. 그제야 비로소 오자서는 백비를 심각하게 경계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백비를 보호한 것에 대해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오자서는 여전히 자신의 힘으로 백비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백비는 이미 오자서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오나라에서는 부차를 제외하고 누구도 백비를 힘으로 굴복시킬 수 없었다. 
더욱이 부차마저 백비를 철두철미하게 신뢰하고 있는 마당이니 백비의 권세는 말 그대로 절정에 올라 있었다. 오자서는 다시 한번 가슴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