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리더라면 간신 모리배의 계속된 교언영색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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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광21
  • 승인 2025.05.0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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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수의 ‘Back to the Future’ 탐관오리 열전 ⑨

재물과 미녀가 연출한 망국의 원흉 탐관오리 백비 ③

천신만고 3년만에 귀국한 구천은 회계에서의 치욕을 씻기 위해 ‘와신상담’ ‘절치부심’ 국력 재정비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월나라는 장장 20년 동안 ‘십년교훈十年敎訓, 십년생취十年生聚’라는 대형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회계에서의 치욕이라는 과거를 교훈 삼아 각 분야의 산업을 발전시켜 생산력을 높이고 국력을 신장시키는 국가 대발전 종합계획이었다. 
이와 함께 오나라 국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은밀한 공작도 함께 진행시켰다. 매년 엄청난 물량의 재물과 여자 그리고 오락거리 등을 오나라로 보내 권력층의 방탕한 생활을 유도하는 한편 각종 토목건축 사업을 일으켜 자원을 소모시켰다. 
오왕 부차에게는 특별히 선발된 절세미녀 서시西施를 첩으로 들여보내 부차의 심기를 어지럽혀 정사를 게을리 하게 만드는 미인계를 구사했다. 가뭄이 들었다는 핑계로 오나라의 식량을 원조 받아 오나라 창고를 텅 비게 만드는가 하면, 풍년이 든 해에는 좋은 곡식 종자를 몰래 물에 삶은 다음 오나라에 보내 심게 하여 이듬해 오나라의 작황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구천은 백비를 집중 공략했고, 오나라를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림은 구천의 ‘와신상담’을 나타낸 것이다.

 

오나라에 드리운 짙고 어두운 그림자
이런 와중에 구천이 병기를 만들고 군사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여왔다. 
오자서가 부차에게 황급히 이 사실을 알리고 “제 말씀이 의심스러우면 사람을 보내 확인하십시오”라고 알렸다. 구천이 군대를 정비한다는 말에 부차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사람을 보내 사실관계를 확인하게 했고, 아니나 다를까 사실로 확인되었다. 
부차는 백비를 불러 자초지종을 추궁했다. 그러나 백비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월왕이 대왕의 주신 땅을 받는 은혜를 입었으니 당연히 군사로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대는 나라를 지키는 근간이거늘 무엇을 의심하십니까? 다 대왕의 군대입니다”라며 능청을 떨었다. 판단력을 상실한 부차는 백비의 말을 믿고는 전혀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다.
백비는 대체 오나라 신하인지 월나라 신하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는 물론 여기에는 월나라의 끊임없는 뇌물 공세가 작용한 결과였다. 수시로 보내는 막대한 재물 앞에 가뜩이나 재물에 욕심이 많은 백비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그 결과 철두철미 월나라의 대변인이 되어 버렸다. 아예 보호자로 자처하고 나설 정도였다. 
오자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월나라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그는 부차에게 끊임없이 월나라는 오나라 몸속에 박힌 고질병과 같아 제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발병하여 월나라 전체를 해칠 것이라 경고했다. 

깊어가는 오나라의 모순과 갈등
더욱이 월나라의 범려와 문종은 당대의 최고 수준의 인재들로 이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월나라가 재기는 물론 장차 오나라의 가장 큰 근심거리가 될 것이라는 냉철한 분석도 제기했다. 오나라를 지탱하는 대들보와 같은 오자서의 경고인지라 아버지 합려만큼은 못했지만 부차 역시 오자서의 경고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부차는 구천의 항복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눈치 챈 백비는 과거 오자서가 원수의 나라인 초나라의 수도까지 점령하고도 초나라를 멸망시키지 않고 복국시킨 까닭이 무엇이냐고 물고 늘어졌다. 자신은 원수를 갚고도 초나라로부터 너그럽다는 평가를 듣고, 오왕 부차는 월나라로부터 각박한 군주라는 악평을 듣게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오자서를 공박하고 나섰다. 
또 양식을 빌려주지 말자는 오자서의 논리도 결과적으로는 오왕 부차를 악덕 군주로 만드는 일이라며, 지난 날 오자서가 탕이 걸을 무왕이 주를 토벌한 사례를 든 것을 가지고 오자서가 부차를 걸·주에 비유한 것 아니냐며 어거지 논리를 들이댔다.
백비에게로 완전히 쏠려있던 부차로서는 백비의 논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월나라가 공급하는 재물과 각종 오락 그리고 미녀 서시에게 빠져 한없이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던 부차로서는 새삼 월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키는 일 자체가 내키지 않았다. 부차는 오자서의 충고가 잔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충언은 멀리하고 유혹은 가까이에
오나라는 오자서의 충정과 백비의 사욕이 일대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백비는 부차와 오자서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골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더욱이 오자서에 대한 선왕 합려의 신뢰도와 그 아들 부차의 신뢰도는 강도는 물론 심도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백비는 오자서가 자꾸 어진 임금인 부차를 포악한 군주로 몰고 있다며 부차의 심기를 은근히 건드렸고, 부차는 갈수록 오자서의 충고가 듣기 싫어졌다. 이에 백비는 오자서를 완전히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충고가 번번이 좌절되는 것을 본 오자서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나라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음을 직감한 오자서는 불가항력의 절망에 서서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무렵 부차는 중원에 대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진陳·채蔡·제齊를 잇따라 정벌하고 북상하여 중원으로 발을 뻗치려 했다. 기원전 484년에는 노나라와 연합하여 제나라를 정벌했다. 
월왕 구천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차에게 북진을 부추겨 오나라의 힘을 뺄 요량으로 특별히 사신을 보내 축하하는 한편 3,000 군사를 내어 오나라가 제나라를 정벌하는데 힘을 보태겠노라 앞장서서 장단을 맞추었다. 부차는 마치 제나라를 정복이라도 한 듯이 흥분했다. 그러나 오자서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는 또 한번 부차에게 월나라의 의도를 분석하며 제나라 정벌을 중지하라고 충고했지만 사실 이 무렵 그의 힘은 빠질 대로 빠져 있었다.  

 

오나라의 도성이었던 고소성 유지의 현재 모습
오나라의 도성이었던 고소성 유지의 현재 모습

 

뛰는 자 위에 나는 자 있다지만…
오자서의 끝없는 충고에 그렇지 않아도 싫증을 느끼고 있던 부차는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크게 성을 냈다. 백비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부차에게 오자서를 제나라 사신으로 보내 제나라의 손을 빌려 오자서를 제거하라는 계책을 제안했다. 
부차는 선뜻 백비의 제안을 받아들여, 오자서에게 노나라를 속이고 오나라를 기만한 제나라의 죄를 묻겠다는 내용의 외교문서를 가지고 제나라로 가게 했다. 오자서는 자신의 고단한 처지와 오나라의 위기를 걱정하면서 제나라로 떠났다. 오자서는 이 길에 아들 오봉을 데리고 가서는 평소 관계가 좋던 제나라 친구 포鮑씨에게 맡겼다.
오나라의 의도를 간파한 제나라는 오자서가 부차는 물론 백비와 심한 불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오자서를 죽이지 않고 돌려보냄으로써 서로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다.
부차는 오자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나라 정벌을 단행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모두가 승리에 도취해 부차의 승리를 축하했지만 오자서의 마음은 전혀 편치 않았다. 이 작은 승리가 큰 재앙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축하 연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백비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전쟁 승리 후 찾아올 새옹지마
그는 한창 흥이 오른 부차 앞에서 “오자서가 승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연회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나라의 중신으로서 안팎으로 모범을 보여야 하거늘 늘 불만에 차서 원망의 말만 늘어놓고 있으니 이게 신하로서 할 도리입니까? 선왕의 총애가 아무리 컸다지만 이런 작태는 왕을 능멸하는 것입니다”라고 헐뜯은 다음 잠시 뜸을 들이더니 “게다가 이번에 제나라로 가면서 아들을 데리고 가서 포씨에게 맡기며 뒷일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이는 반역에 해당합니다”라며 결정타를 날렸다.
부차 역시 이 기회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반역’이란 단어가 나오기 무섭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보검인 ‘촉루검’을 오자서에게 보내 자결하도록 압박했다. 오자서는 촉루검을 받아들고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하늘을 우러러 통곡을 한 다음, 백비의 헛소리를 믿은 부차를 한바탕 욕하고 오나라가 머지않아 멸망할 것이라는 저주의 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섬뜩한 유언을 남기고 목을 그었다.
“내가 죽거던 내 두 눈알을 고소성 동문 위에 걸어 언젠가 월나라 군대가 그 성문을 통해 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모습을 똑똑히 보게 하라!”

 

김영수 교수
(사)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