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과 미녀가 연출한 망국의 원흉 탐관오리 백비 ④
오자서의 죽음은 오나라의 멸망을 알리는 마지막 조종이었다.
기원전 482년 오나라는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제나라 정벌에 나섰고 가뜩이나 엉망이 된 경제력과 산업 기반은 거의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원 패자에 대한 강렬한 욕심에 사로잡힌 부차는 중원의 진晉나라와 패권을 다투기 위해 정예병을 이끌고 황지黃池(지금의 하남성 봉구 서남)로 와서 제후들과의 회맹을 소집했다. 국내는 태자에게 맡겨 두었다.
바로 이때 20년을 넘게 복수의 칼을 갈아오던 월나라가 마침내 오나라를 등 뒤에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월나라 군대는 파죽지세의 기세로 오나라의 수도인 고소성으로 쳐들어왔고 역부족인 태자는 급히 부차에게 사신을 보내 급보를 알렸다.
그러나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부차가 서둘러 귀국했지만 오나라 군사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했고 전투는 속수무책으로 악화됐다.
부차는 그 옛날 월나라가 회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백비를 보내 화의를 구걸했다.
오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한 월나라의 집요함
오나라를 단숨에 멸망시키기 위해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던 월나라는 일단 화의를 받아들였지만 기원전 475년과 기원전 473년에 다시 대군을 동원해 오나라를 공격하여 초토화시켰다.
부차는 대부 왕손락을 시켜 비굴한 내용의 국서를 전달하게 하면서 다시 화의를 구걸했지만 월나라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차는 수치와 분통을 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죽어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으니 자신의 얼굴을 천으로 덮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오나라는 멸망했고 월왕 구천은 보무도 당당하게 고소성으로 입성하여 오나라 문무백관들의 인사를 받았다.
오나라 문무백관들은 모두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월왕 구천의 일장 훈계를 치욕스럽게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단 한사람 간신 백비만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은 누가 뭐라 해도 오나라 멸망에 큰 공을 세우지 않았는가? 월나라의 든든한 후견인이 누구였던가? 바로 자신, 백비 아니던가? 백비는 큰 상을 상상하며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백비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와 구천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갖은 형용사를 다 동원해 일생 최대 최고의 축하 인사말을 올렸다. 구천도 넉넉한 미소로 백비의 인사에 답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오나라의 태재로군! 내가 어찌 감히 당신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당신 왕은 지금 양산陽山(부차가 죽어 묻혀 있는 곳)에 있으니 그곳으로 가보도록 하시게나!”

자신과 가족 몰살을 가져온 백비의 최후
구천은 오자서를 대신해 복수를 해주겠다며 망나니를 불러들여 그 자리에서 백비의 목을 댕강 자르게 하고 그 가족도 모조리 죽이게 했다.
패가망신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도 망치고 자기도 망친 ‘망국망신’, 이것이 간신 백비의 말로였다.
역대 둘도 없는 탐관오리 유형의 간신 백비에 대해 공자의 수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자공은 다음과 같은 냉철한 논평을 남긴 바 있다.
“태재 백비는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군주의 잘못에 순종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욕을 채웠으니 나라를 해치는 통치였다.”
실제로 백비는 개인의 사욕을 도모함으로써 망국의 화를 키웠다. 간신에 어리석은 군주, 이것이야말로 망국으로 이르는 절묘한 앙상블이 아닐 수 없다.
능력 있고 충직한 사람들이 탐관이나 간신에게 일쑤 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이들을 무시하거나 얕잡아보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는 자만에 빠져 있다가 엉겹결에 기습을 당하거나 불의의 공격을 당한다. 방심이 문제인 것이다.
탐관오리든 간신이든 방심의 결과물
오자서는 백비를 충분히 그리고 언제든지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해 방심했다. 그 결과 언제부터인가 백비를 통제할 수 없게 되고 뒤늦게 백비를 통제하려고 무리수를 둔 결과 왕의 신임마저 잃는 결과를 자초했다. 여기에 오자서의 인정상 약점도 간신 백비가 힘을 키울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되었다.
오자서에 대한 합려와 부차의 신뢰도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도 지적해야 할 점이다. 백비는 이 미묘한 차이를 절묘하게 파고들었고 오자서는 합려와의 관계 속에서만 부차를 인식하는 우를 범했다.
부차·오자서·백비 3인의 미묘한 관계는 결국 갈등과 불화로 비화됐고 이런 상황은 호시탐탐 재기와 복수를 노리고 있던 월나라에 의해 탐지됐다.
탁월한 정치가였던 월나라의 대신 범려와 문종은 오나라 지배층의 갈등 관계를 한껏 이용해 이들 사이를 이간질했다.
특히 탐욕스러운 백비를 집중 공략하여 자기편으로 포섭해 충신 오자서를 끝없이 모함하게 만들었다.
백비의 탐욕이 월나라에게는 재기와 복수를 위한 절호의 기회를 준 반면 오나라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내게 한 것이다.
요컨대 탐관이든 간신은 방심의 틈을 노리는 일을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으며 기회를 잡으면 절대 놓치지 않는다. 이들은 나쁜 존재일 뿐만 아니라 무서운 존재다. 이런 자들이 나라를 멸망으로 이끄는 것도 문제지만 나라를 망치기 때문에 더 큰 문제다.
간신은 방심의 산물이며 우리들이 갖고 있는 든든한 보루인 도덕적 잣대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느슨한 눈금 하나 사이로 쥐도 새도 모르게 파고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간신은 우리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어둠의 ‘사탄’이자 우리의 방심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상대적 ‘악’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재물과 여색을 탐하는 탐관의 약점
백비의 정체를 정확하게 간파한 문종과 월나라의 정보력에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문종은 백비의 탐욕과 여자를 탐하는 ‘탐색貪色’에 맞춰 뇌물 공세를 퍼부어 월나라의 위기를 넘기고 나아가 오나라 내부를 이간했다.
탐관의 치명적 약점, 즉 재물을 탐하는 ‘탐재貪財’와 ‘탐색’을 집중 공략함으로써 원하는 결과를 끌어냈다. 탐관을 공략할 때 참고할 지점이다.
이상 살펴본 탐관오리 백비의 생생한 행적은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다음과 심각한 교훈들을 던지고 있다. 교훈은 결과보다 더 깊은 생각을 일으킨다. 마무리로 정리해둔다.
‘탐욕이 일단 권력, 그것도 큰 권력과 결합하면 탐관오리는 물론 거물급 간신으로 변모해 심지어 나라를 멸망으로 이끈다.’
‘탐관오리든 간신이든 제 때 제대로 척결하지 않으면 독버섯처럼 자란다. 요컨대 간신과 탐관오리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존재들이다.’
‘탐관오리가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틈이란 없다. 백비는 부차의 틈을 정확하고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승자의 여유는 탐관이나 간신이 파고 들 틈이나 마찬가지이다. 탐관과 간신에게 여지를 남기거나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대가와 보답 없는 뇌물이란 없다. 뇌물 자체를 머리에서 지워야 한다.’
‘나라를 파는 자들의 명분과 논리는 아주 당당할 뿐만 아니라 온갖 수식어로 비열한 짓거리를 감싼다.’
‘탐행이나 간행을 바로 바로 폭로하지 않으면 탐관과 간신의 간덩이는 갈수록 커진다.’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기 마련이고 이 처음의 성격에 따라 또 그 처음에 반응하는 사람의 수준 차이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게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