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대민지원 혼신 다한 젊은 그대!
나는 법성에서 나고 자랐다. 수십년간 법성의 풍경을 보았지만 이번 겨울처럼 많은 눈이 한꺼번에 오는 풍경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잿빛 하늘아래 하얀 꽃송이처럼 흩날리던 눈송이는 어느새 법성포의 겨울을 하얗게 물들였다. 그러나 보기에는 아름다웠던 눈이 재앙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12월5일, 길을 나섰다. 정강이까지 차오르는 눈은 금새 신발과 바지를 차갑게 적셨다. 새하얀 눈속에 기분 좋은 듯이 파묻혀있는 차는 문을 열기도 힘들었다. 교통은 완전히 마비되고 어디가 찻길이고 어디가 인도인지, 어디가 길이 아닌지 구분조차 어려웠다.
내가 몸담고 있는 영광대대는 무너진 양계장에서 닭을 구하는 대민지원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역의 방위를 책임지는 예비군중대장으로서 나 역시 무엇인가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던 눈들이 지역주민, 나의 이웃들에게는 고통이 되고 있었다. 쌓인 눈은 검은 인삼밭조차 하얗게 물들이면서 지주목을 다 부러뜨리는가 하면 축사와 비닐하우스 지붕에 한 가득 올라앉아 지붕을 짓눌렀다.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3명의 읍·면대 대원들을 이끌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이웃들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하나 하나 복구작업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인력의 아쉬움을 절실하게 느낄 무렵 주민과 군청의 요청에 따라 영광대대에서 대규모의 병력을 지원해 주었다.
1주일 넘게 휴일도 없이 이어진 대민지원 때문일까. 한창 나이의 젊은 병사들은 얼굴 언저리에 피로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억장이 무너져 내린 주민들을 위로하면서 어려운 작업을 도맡아 해주고 있었다. 철없이 행동해도 이상하지 않을 젊은 나이에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그들이 너무나 대견했다.
그렇게 계속된 응급복구지원작업은 어느새 한달을 훌쩍 넘겼다. 이제는 영광대대뿐 아니라 추가지원을 위해 지역으로 증원된 특전사 병력들까지 나의 이웃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을 도와주고 있다. 법성지역 예비군중대장이기 이전에 법성에서 나고 자라온 한 사람의 지역민으로서 그들이 너무나 고맙다. 이 말 밖에는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폭설이 시작된 지 45일째. 그 사이 날씨는 내가 알고 있던 예년의 법성 겨울날씨를 회복했다. 서늘한 기운을 잠시 드리워놓고 가는 짭짤한 바닷바람까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도 일상을 되찾았다.
그동안 헌신적으로 도와준 그들이 있었기에 내 이웃들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무너져버린 폐허위에 새로운 건물, 축사, 비닐하우스와 같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일이다. 응급복구작업이 마무리됐으니 이제 희망을 담아 새 터전을 일구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쉬운 것은 복구현장으로 폭설과 혹한을 뚫고 지원을 왔던 그들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쉬운 만큼 나는 그들을 계속 그리워 할 것 같다. 젊은 그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찾아와서 항상 웃는 얼굴로 희망을 심어주고 일상을 되찾아준 그들. 어쩌면 수십년간 법성에서 살아온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새하얀 눈으로 물든 법성포가 아니라 바로 그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김덕수 중대장<법성면예비군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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