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식 고취한 신홍식 선생
민족의식 고취한 신홍식 선생
  • 영광21
  • 승인 2006.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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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독립운동가
신홍식(申洪植) 선생은 1872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학을 익힌 뒤 한말 국가존망의 위기 속에서 1904년 기독교에 입교해 종교의 양심과 민족의 양심을 동시에 구현하면서 목회활동과 독립운동에 힘썼다.

3·1운동 당시에는 평양 남산현교회의 목사로 활동하면서 이승훈과 상의해 기독교계 대표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인으로 서명하고,

서울 태화관에서 열린 민족대표독립선언식에 참석했다가 일경에 체포돼 3년 가까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뤘고, 출옥 뒤에도 끊임없이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민족운동에 참여했다.

1920년대에는 민족주의 단체로 조직된 흥업구락부에서 활동하고, 1930년대에는 겉으로는 기독교 개혁을 표방했지만

속으로는 민족독립을 위한 실력양성을 도모했던 적극신앙운동에 동참했다가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곤욕을 치룬 뒤 충북 청주로 낙향했다.

국가보훈처는 1939년 67세로 일생을 마친 선생의 숭고한 애국충정의 뜻과 공훈을 기려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