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교수 "한미FTA 충격, IMF 못잖게 클 것"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본협상이 지난 5일 미국에서 시작됐다. 이번 한미FTA 1차 본협상에 참여하는 우리 정부 대표단은 모두 160명 수준에 이르러 우리 정부의 대외 통상협상 사상 최대규모의 협상단을 해외에 파견하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또 사안의 민감성으로 인해 정부 대표단 외에 대한상공회의소, 무역협회 등 여러 경제단체와 업계에서도 정부 협상단 지원 및 정보수집 차원에서 관계자들을 워싱턴으로 파견했다.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미FTA 반대 원정투쟁단'의 항의속에 본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정치학계 대표적 학자인 최장집 교수가 최근 발간한 신간에서 한미FTA 협상 통과가 미칠 영향에 대해 정치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내용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본지는 관련 내용을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보도된 글을 발췌 게재한다. / 편집자 주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충격을 미친 사건은 말할 것도 없이 IMF 금융위기였다. 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현재 논의되는 방향에서 타결된다면 그 충격효과가 IMF 금융위기 못지않게 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는다."
고려대 최장집(정치학) 교수가 한미 FTA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최 교수는 최근 3년 동안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쓴 글을 묶어 펴낸 <민주주의의 민주화>(박상훈 엮음, 후마니타스 펴냄) 중 한미 FTA에 대한 새로운 글 '한미 자유무역협정 정책 비판과 대안적 발전모델'에서 노무현 정부의 FTA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FTA 충격효과, IMF 못지 않게 크다"
최장집 교수는 한미 FTA에 대한 지식인, 언론의 나태한 대응을 질타라도 하듯 글의 첫 머리를 "현재 한국사회의 최대 이슈는 한미 FTA 추진을 둘러싼 문제라 할 수 있다"로 시작했다.
최 교수는 "한미 FTA가 우리 사회에 미칠 충격효과가 IMF 금융위기 못지않게 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는다"고 토로했다. 도대체 왜 그는 한미 FTA에 대해서 이렇게 위기감을 갖는가?
"우리가 하나의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때 그 체제는 '스스로 통치해야 한다'는 조건을 가져야 한다. 즉 외부로부터 다른 강력한 정치체제가 부과하는 제약으로부터 독립해서 독자적으로 행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영토 밖 행위자들의 승인 없이는 정책결정을 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미 FTA 정책 추진에서 느끼는 필자의 두려움은 그 충격효과가 경제적이고 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정치적이라는 데 있다."
"우리 사회의 요구와 필요에 기초를 두어야 할 정책결정의 자율성은 치명적으로 제한받게 될 것이며, 우리 사회가 가진 제도·문화·인적 조건의 비교우위에 바탕을 둔 자체적인 생산체제의 유지와 발전이 어렵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 문제를 한미 FTA 정책이 가져올 가장 위험한 결과로 본다. 나는 한미 FTA가 현재 논의되는 방향에서 타결된다면 그 충격효과가 IMF 금융위기 못지않게 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는다."
이런 최장집 교수의 우려는 한미 FTA가 결국 한국사회 전체를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고착시킬 수 있다는 강한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간 최 교수는 민주화 이후 민주정부에서 왜 사회복지 친화적인 생산 및 분배 체계가 발전되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집중해왔다. 최 교수가 보기에 한미 FTA는 이런 고민마저도 무력화시키는,
즉 한국사회에서 영영 '민주주의, 평등, 노동의 권익 신장'같은 것을 말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는, 다시 말해 더 이상 한국사회에서 온전한 민주주의의 작동을 불가능하게 하는 길에 들어서는 것과 다름아니다.
"성장 계속돼도 양극화 심화가능성"
최장집 교수가 가장 큰 문제로 꼽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성장 중심론'이다. 최 교수는 "정부의 경제정책 결정자들이 성장의 둔화를 걱정하고 그 원인을 따지며 생산성 향상을 위해 새로운 충격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동안,
제조업이 급격히 약화된 산업구조와 분절화된 노동시장 체제(정규직-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빈부격차 및 양극화가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지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그들에게 양극화 문제는 성장둔화의 결과물일 뿐 그 인과관계가 역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약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과 주요 정책결정자들은 성장의 분배효과(성장이 가져다주는 '넘쳐흐르는 효과', '윗목-아랫목'론)에 대해 일방적으로 과신하고 있다"며
"하지만 성장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최고소득 집단은 언제나 제일 앞서고, 중간은 언제나 중간이고, 제일 소득수준이 낮은 집단은 언제나 맨 뒷줄에 서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일"
최 교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라는 외적 제약이 크다 하더라도 모든 나라가 동일한 발전 경로를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사회적·정치적 계기들의 응집을 통해 미국 일변도의 신자유주의 모델이 고착화되는 것을 억제하고,
사회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생산체제를 향한 적절한 모델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희망을 피력하면서도 "현재의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 방향의 대안이 개척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며 현 정부에 대한 강한 실망감을 토로했다.
최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한미 FTA 추진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글을 맺었다.
"분명한 현실은 (한미 FTA가) 한국경제를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수직적으로 통합시키는 것을 가속시키고 악화일로에 있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한미 FTA의 추진을 통해 일방적 신자유주의 모델로 달려 나가는 것은 단순히 노무현 정부만의 실패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한국경제 나아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매우 어둡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
저작권자 © 영광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