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역대 선거 중 이번 지방선거처럼 재미없는 선거는 없었다. 물론 선거를 재미로 따질 일은 아니겠지만, 선거가 끝난 후 개표방송을 지켜보면서 후보의 당락이나 승패를 가늠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에게는 쏠쏠한 흥미거리인 것은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결과가 너무나 눈에 훤히 보이는 판세여서 선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재미마저 애당초 빼앗긴 채 시작되었고, 예상대로 끝이 나고 말았기에 가히 '한숨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의 참패에 대한 여러 진단들이 나오고 있다.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호남과 개혁세력의 연대를 새로운 지지기반인 지역성을 탈피한 개혁세력의 연대로 바꾸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개혁을 방기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따지고 보면 열린우리당이 민주당과 분당하고 나온 것도 개혁을 위한 것이었고, 국민들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해 표를 몰아준 것도 제대로 개혁해서 정치를 변화시켜달라는 민심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개혁과는 거리가 먼 한나라당과 상생을 내세운 열린우리당은 국회에서 사사건건 한나라당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이번 패배는 일찌감치 예견된 결과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의 염증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이다. 국민들이 외치는 목소리는 확실하다. 한나라당은 나름대로 일관성이라도 있는 야당이지만, 열린우리당은 집권여당이면서 정체성은 실종되고 해놓은 일은 아무것도 없는 무능한 집단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직까지 지방자치는 지방자치가 아니라 중앙정치의 지역판에 해당될 뿐이다. 지방선거가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로 치러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기야 민심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선거밖에 없다보니 그도 그럴 것이다. 아무튼 중앙정치가 어찌 되었든 지역의 문제를 주민의 뜻대로 풀어나가는 독립된 지방자치가 만개하기 위해서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4월에 도입된 '주민소환제'의 약효가 온전히 살아나야 할 것이다.
도지사에서 시장과 군수 게다가 지방의원까지 한 정당이 독점한 상황을 보면서 한가지 걱정이 앞선다. 제대로 된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주민들의 피와 땀으로 장만한 곳간을 잘 보전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지역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지경이지만 지나친 갈등으로 군정에 상당한 혼선이 올까 걱정이다.
다만 지금으로써는 이 모든 걱정들이 단순한 기우에 불과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새로운 당선자들의 현명한 행보를 간절히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서 어쩐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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