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인사대천명을 떠오르게 한 재해
진인사대천명을 떠오르게 한 재해
  • 영광21
  • 승인 2006.07.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록적인 폭우로 전국이 초토화되었다.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재민의 모습을 TV를 통해 보았을 때, 한마디로 '망연자실' 그대로였다.

물폭탄을 맞았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져서 하루 아침에 마을 전체를 삼켜버릴 정도였으니 그 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혹한 물난리 뒤끝에 관계당국자들은 "이렇게 많은 비가 한꺼번에 내릴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고 하며, "있는 장비를 모두 동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시간당 70mm가 넘게 쏟아지는 장대비에 신속하게 대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수해도 여러 군데는 '인재'였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허탈에 빠진 주민들을 분노케 한다.

안양천 둑이 터져 일부 주택가가 물에 잠긴 건 인근 지하철 공사장의 안전 불감증 때문이라고 한다. 일산 지하철역이 침수된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또 유난히 산사태 피해가 큰 강원지역은 공사비를 줄이려고 무리한 공사를 해서 급경사가 늘었지만 사태에 대비한 안전장치는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매년 비슷한 재해가 인접한 지역에서 반복되는 것도 문제다. 방재당국은 기록적인 폭우만을 탓할 일이 아니라 치수 및 방재정책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마구잡이 개발로 일관된 결과 자연의 치유력이 떨어져 우리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하는 재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아울러 이번에도 확인된 기상청의 뒷북예보에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대형재난이 있을 때마다 무용지물이 되고마는 기상예보시스템 문제를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한다.

이번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항변하지만 "이미 물바다로 변한 뒤 내려진 경보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항의가 끊이질 않는 것을 보면 후진국형 '인재' 뒤에는 후진국형 시스템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자연재해에는 분명 예측 불가능한 측면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를 잘 대비하고 피해를 줄이는 것이 재난대책의 핵심이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1조6천억원 꼴로 피해가 발생하고 다시 이를 복구하는 데 1조8천억원이 투입된다고 한다.

피해복구도 시급하지만 이제는 사전예방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적어도 같은 지역에서 똑같은 재해가 되풀이되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다.

장마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5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수천 가구가 물에 잠겼다. 도로와 농지가 유실되고 침수된 곳도 부지기수다. 더욱 걱정스러운 건 추가피해다. 장마전선은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오가며 사나흘 비를 더 뿌릴 것이라고 한다.

겨우 한숨 돌린 지역은 물론이고 태풍 에위니아가 휩쓸고 지나간 남부지역 모두 2차 피해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비록 '사후 약방문'이지만 다시 한번 주변을 꼼꼼히 점검해 '인재'였다는 얘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부는 갈수록 커지는 재해규모와 위력에 걸맞게 각종 방재기준과 안전대책을 한층 강화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또한 재해예산의 60%가 복구비로 쓰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여 적극적인 방재에 대한 투자가 오히려 절약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오늘따라 새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