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순례<법성면>

30년 가까이 이곳 시장에서 고추며 콩 등의 농산물 중간도매상을 해온 진순례(62)씨. 오랜 세월 장사를 하고 살아온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는 여성스럽고 고운 모습의 그는 법성면 용성리 성촌마을에 살고 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진 씨는 2살 되던해 아버지를 잃고 일찍 시집간 언니를 대신해 어머니를 모시며 살았다. 22세때 같은 마을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해 2남2녀의 자녀를 두고 넘치는 넉넉한 생활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살았다. 하지만 그는 41세 되던해 남편을 폐암으로 잃고 모질고 험한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됐다.
“우리마을은 예전부터 농토가 적어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마을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농산물 장사를 조금씩 했습니다”라며 장사를 하게된 이유를 설명한 진 씨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이 제 몫이 되면서 더 바쁘고 많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수밖에…”라고 말끝을 흐리며 지난 세월의 복받친 서러움을 나타냈다.
남편이 숨을 거뒀을 때의 진 씨의 자녀들은 10살에서 20살까지 부모의 손길이 한참 필요한 시기였다. 진 씨는 둘이 벌어서도 감당하기 힘든 자녀교육과 생활까지 책임지면서 힘겨운 나날을 시작했던 것. 경운기로 영광시장까지 오가며 10년이 넘게 장사를 해온 그는 50이 넘은 나이에 운전면허에 도전을 했다.
경운기를 오래전부터 운전한 터라 실기 시험은 문제가 없었지만 그에겐 필기 시험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그는 2번 낙방 끝에 합격의 영광을 얻었다. 이렇게 뒤늦게 면허를 취득한 그는 트럭을 몰고 마을 곳곳을 다니며 주민들에게는 좀더 높은 가격을 쳐주고 중간 소매상들에게는 싸게 물건을 넘기며 욕심없는 거래로 확실한 단골들을 확보해나갔다.
출산을 앞두고 친정에서 잠시 머무르고 있는 둘째딸은 “우리엄마요. 한마디로 불쌍하죠. 한참 젊은 나이에 혼자돼 우리 남매들을 키우며 고생도 많이 하셨고 이곳 저곳 장사를 다니다 보니 주변에서 괜한 오해도 많이 받으시며 마음 고생이 많으셨습니다”라며
“요즘은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예전만큼 장사를 하시지는 못하지만 어머니를 아직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연락을 해오고 있다”고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과 안쓰러움을 밝혔다. 진 씨의 둘째딸은 법성상고를 졸업하고 한국조폐공사에 취직해 직장생활을 하면서 야간대를 졸업했고 다시 한의대를 진학해 현재 무안에서 한의원을 경영하고 있다.
자식 뒷바라지를 하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시작한 장사이지만 원칙과 정직을 지키며 바른 상거래를 지켜온 진 씨는 지나온 모진 세월의 가슴 시린 한을 깊고 넓은 베품으로 승화시키며 남겨진 세월을 조심스럽게 채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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