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새우잡이와 어촌계장 둘다 놓칠 수 없죠"
"젓새우잡이와 어촌계장 둘다 놓칠 수 없죠"
  • 영광21
  • 승인 2006.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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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수산인 23 - 젓새우잡이 / 박영태씨<낙월>
"저것은 지 일은 하지도 못하고 맨날 남의 일만 쫓아 다닌당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람 얼굴보다 먼저 목소리가 반긴다. 낙월도에서 나오자마자 이미 여러곳에 팔품을 팔았다.

'하낙월도 어촌계장'이라는 족쇄화된 감투탓도 있지만 교통·행정의 사각지대에 놓인 섬주민들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좋은 박영태(49)씨. 오랜만에 만남 지인에게서 인사말 대신 듣는 힐난이 익숙한 듯 했다.

그의 배는 '닻배'라고 불리운다. 서해안 빠른 물살에 250m나 되는 그물을 바닷속에 고정시키기 위해 10여m의 큰 닻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의 닻배는 철따라 오젓, 육젓, 김장새우 등을 잡는다.

"지금이 최고로 좋은 젓새우들이 한참 날 때인데 저기 멀리 흑산도 있는 데까지 나가야 한당께." 한때 낙월도는 전국 젓새우 생산량의 70%를 차지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박물관의 유품이 돼버렸지만 일명 '멍텅구리배'라고 불리던 무동력선이 명성을 떨치던 시절 이야기이다. "그때는 새우 찾으러 바다를 헤집고 다니지 않았어. 저 무동력선으로 낙월도 바다 한귀퉁이를 지키고만 있어도 새우가 겁났제."

옛 영화는 고사하고 이젠 먼바다에 나갈 기름값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더욱이 그물안에는 젓새우 대신 해파리만 가득하고 시장엔 중국산이 판을 치니 한숨이 절로 난다.

"병난당께. 병" 육지생활을 한마디로 정리해 버리는 그는 낙월도에서 태어나 낙월도를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다. 천상 바다사나이인 것이다. 그런 그가 멀미 때문에 바다어장엔 나가지 못한다니 왠지 모를 웃음이 앞선다.

"아이구, 말도 마. 바다에선 멀미가 사람잡는당께. 그나마 우리 선장님이 잘한께 믿고 맡기는 거제." 한번 출어에 10여일씩, 시시각각 변하는 먼바다 파도는 20년이 넘는 베테랑 어부를 육지에 꽁꽁 묵어놓고 있었다.

배가 나가기 전엔 출어준비로, 또 입항때엔 판매로 정신이 없다. 그런 그에게 배가 바다에 있는 동안엔 황금같은 휴식기일테지만 시간은 쉽게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바다에 있는 배 걱정에 마음 졸임이 크기도 하지만 어촌계장으로써 본격적인 활동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낙월에 젓새우배들이 50여척이고 우리 계원들만 44명인디, 어촌계장이란 사람이 여유를 부려야 쓰것는가." 사명감이 묻어난 반문이 오히려 나를 쑥스럽게 한다. 일상적인 어촌계사업에서부터 방파제 확장, 그물크레인 설치, 자율관리사업 등 어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에는 열심히 발품을 팔아온 그, 어촌계장 5년이란 장기집권(?)이 그냥 주어진 것만은 아닌 듯하다.

"남는 것은 애들뿐이여." 바다는 어린 그에게 아버지를 앗아갔다. 4남매 장남인 그에게 세상은 단 한치도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섬에서 나고 자라 국내 유수의 대학에 다니고 있는 3남매 자식들을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

김광훈 객원기자 mindlre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