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인의 난과의 만남 ⑦ - 진산세고

그 후 그는 혼자 살아남은 것이 부끄러워 초야에 묻혀 살면서 30여년을 오직 화훼재배 연구에만 몰두했다. 강희안의 동생인 강희맹이 훗날 조상의 문집을 한데 모아 <진산세고>를 인간하였는데 <양화소록>을 <진산세고>의 권4에 수록하여 세상에 전하게 됐다.
세계 최초의 화훼재배 기술서적인 <양화소록> 1권이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 일본국보로 지정돼 있으며, 오늘날 일본이 분재 등 화훼재배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밑바탕이 <양화소록>이며 <진산세고>는 이의 모체이고 원본으로 보고 있다.
원문을 해설하면 사림광기에 이런 말이 있다. 난초가 이소(離騷)에 나타나 보이는데 초나라 사람이 난초는 구원(九 )을 심고 혜초는 백묘를 심으니 난은 적으므로 귀하고 혜는 많으므로 천하다고 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한결같이 난이라고 하지만 그 종류는 실로 다양하니 심자(深紫), 담자(淡紫), 진홍(眞紅), 담홍(淡紅), 황란(黃蘭), 백란(白蘭), 벽란(碧蘭), 녹란(綠蘭), 어타(魚 ), 금전(金錢) 등이 그것이다.
난꽃의 빛깔이 두세 종류가 있는데 혹은 흰빛 혹은 자줏빛 혹은 연한 푸른빛들이다. 꽃은 언제나 이른 봄에 피지만 추운 겨울이라 할지라도 고결한 모습은 스스로 같다. 분란법에서는 난을 분식하기 한달 전에 한군데 모아놓고 모래를 쓰되 자갈은 추려내어 줄기를 들추어 준다.
인분을 섞어 버무려 말려 두었다가 한로때 원분(元盆)을 깨고 손으로 흙을 털고 묵은 노두는 버리고 3년이 된 이삭만 남겨 둔다. 3~4 이삭으로 한분을 만들되 묵은 이삭은 안쪽에 새 이삭은 바깥쪽에 심는다. 난이 크고 높으면 분이 빨리 가득차고, 크고 낮으면 뿌리가 국척하여 펴나질 못한다. 낮에는 햇볕을 가려주고 밤이면 이슬을 맞혀 탐스러운 놈과 야윈 놈을 적의하게 가꾸면 잘 산다.
화목의기(花木宜忌)에서는 난초와 혜초를 심는데 수주(水酒)를 쓰는 것을 꺼린다. 우리나라에는 난초와 혜초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분에 옮긴 뒤에 잎이 점점 짧아지고 향기도 좋지 않아 국향의 뜻을 잃고 있다. 그러나 호남 연해의 산에서 난 것은 품종이 아름답다. 서리가 온 뒤에 뿌리를 다치지 않게 제자리 흙으로 싸주고 옛법대로 분에 심음이 좋다.
초봄에 꽃이 피거든 등불을 켜놓고 책상위에 난분을 올려 놓으면 이파리의 그림자가 벽에 박혀 야들야들한게 구경할 만 하며, 글을 읽는데 졸음을 쫓기도 한다. 비록 설창(雪窓)의 구원춘융도(九 春融圖)를 걸지 않더라도 또한 적적하지 않다.
<양화소록>은 당대 최고의 원예서로서 꽃과 나무의 재배와 감상법을 논한 것으로 특히 난에 있어서는 최초의 재배서라 하겠다. 사진글 - 진산세고(보물 제1290호)
백용인 <영광군 농업기술센터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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