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발
고 발
  • 영광21
  • 승인 2006.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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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작 / 김상희(법성고2)
내가 사는 곳은 삼면이 산이고 앞쪽이 바다인 곳이다. 그래서 TV나 뉴스에서 나오는 환경문제는 솔직히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대한 게 사실이다. 내 주위에는 그런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달라지고 있었다.

1,2년 전쯤 세워진 아파트와 영광실고의 중간에는 개천이 하나 있다. 그 개천이 깨끗한 개천이 아닌 것을 영광종합병원 다녀오는 길에 알게 되었다. 종합병원을 나와 도로를 건너서 논길을 걸어갔다.

그러나 짧은 다리를 건너던 중 지독한 악취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 악취의 원인은 바로 그 개천 어디에서 그 물이 흘러나오는 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거기에서 나는 악취는 보통 이상이란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런 개천에선 아무것도 살지 못할 텐데 그 물을 봐보니 역시나 물고기 한 마리 없었다. 대신 각종 쓰레기 봉지와 진한 녹색의 해초처럼 생긴 수중식물이 물고기의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 식물은 오염된 물에서 사는 걸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 하천 오염의 심각성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파트를 만들면서 생긴 걸까? 아니면 원래 그 하천은 쓰레기들을 흘려보내는 하수 배출구 정도였을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이 다니는 길이 바로 옆인데 빤히 오염된 물을 흘려보내는 건 주민이나 지나다니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됐다. 이런 환경을 개선주어야 할 영광군의 무관심에도 화가 났다.

그리고 아무도 거기에 대해 항의하지 않았을까? 그냥 몇 번 지나가는 길이라서 항의를 하지 않은 걸까? 그동안 나의 무심함도 문제지만 아파트 주민 같은 경우엔 창문을 열면 악취가 조금이라도 났을 텐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던 걸까? 또 가정이 있는 주위의 개천은 깨끗해야 자라나는 아이들도 배우는 게 있을 것이고 자연을 닮은 동심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악취나는 개천을 보고 자란다면 아이들은 미래에 개천을 떠올릴 때 ‘아, 그 더럽고 냄새나는 거?’하고 여겨버릴지 모른다. 그러면 깨끗한 하천은 미래에 구경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의식의 문제일까? 언젠가는 누군가가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하는 도대체 내가 아닌 누가 나의 불편을 알아서 해결해 준다고 믿어서 저리 방치해 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내 머릿속의 개천은 물고기가 헤엄치며 깨끗한 모습이었는데, 언젠가부터인지 그 모습도 희미해 진 것 같았다.

군 단위의 지방도 이 정도라면 말 다 한 것 같았다. 간단하게라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천을 위해 쓰레기를 건져내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에게 주의를 주는 것만 해도 지금보다 30%정도는 깨끗해 질 것이다. 지금 우리 주위의 하천은 그야말로 송사리 한 마리라도 모셔와야 할 처지인 것이다.

개천물의 오염 말고도 환경 파괴는 내 가까운 곳에 일어나고 있다. 우리 집 근처에서 골프장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수 없는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산을 깍아내리는 것은 물론 사람이 쓸 농업용수까지 더럽히고 있다. 나는 반대였다. 산을 깍아내리다니... 말할 것 없이 산에 살던 동식물들은 모두 살던 터전을 잃고 어디론가 쫓겨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산은 우리 마을의 상징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나에게는 위로가 되고 우리 마을의 바람막이이기도 했다. 동식물을 포용하고 신선한 공기를 만들어주던 산이었다. 그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 사실은 얼마 후 알게 되었다. 그 산엔 유난히 뱀이 많이 살고 있었다. 나는 뱀을 무서워하는 편이지만 마을로 내려와서 사람을 물거나 하는 일은 없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공사가 시작된 후 무슨 일인지 뱀이 내려온 모양이었다. 학교 가는 길이었다. 급하게 일어나서 머리를 묶으며가고 있는데 무언가 물컹한 것이다. 순간 놀라서 뒤돌아보니 뱀이 처참에게 짖이겨져 죽어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덤프트럭에 치인 모양이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보금자리를 빼앗긴 뱀의 최후. 괜히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뱀이 무슨 죄가 있다는 말인지. 그런 문제뿐만 아니었다. 사람도 살기가 힘들어졌다. 우리 집은 농사를 짓는다. 공사가 진행된 곳이 바로 농업용 저수지가 있는 것인데 내가 귀가하는 저녁 7시가 넘어서도 나무를 베는 작업은 계속 되곤 했다. 문제는 거기서 일어났다.

산은 저수지를 향해서 조금 기울어진 각도 위에 있는데 나무를 베기 시작하니까 나무가 있던 자리의 흙이 모두 저수지 쪽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저수지가 매워져 농업용수를 구할 길이 막막해 지는 것이다.

농민들은 어찌 살라는 말인지, 사람이 사람에게도 너무 이기적이었다. 있는 사람 더 잘살자고 욕심만 앞서 동물과 사람 다 위태로워진 것이다. 적어도 그곳엔 물고기를 보면서 신기해하고 어릴 적 더위를 삭히던 순수했던 내 추억이 있는 곳이었다. 차라리 그 곳을 그대로 두어 많은 동식물이 살 수 있다면 멀리 볼수록 이익일 것이다.

지금 한순간에 눈이 멀어서 미래의 열 배가 넘을 것들을 파괴하고 있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내 주변에 이런 일이 이렇게 빨리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을 놓치지 않고 시작한다면 환경오염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을 것이다. 발전하는 만큼 더 많은 과제가 생기는 것이 환경문제이다. 물론 개발 탓만은 아니다.

이 글 앞에서 언급한 우리의 무심함 때문에 더 큰 문제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이제 앞을 내다보며 선진국만 무조건 따라가는 잘못된 생각보다는, 우리에게 맞는 보존방법을 찾아야한다. 그래서 우리의 양심이고 살인 우리 국토를 지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