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들을 찾아 떠난 알찬 여행
영광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들을 찾아 떠난 알찬 여행
  • 영광21
  • 승인 2006.12.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버스 타고 불갑사에서 백수해안도로까지 '영광버스투어' 참가기
정말 알찬 여행이었다. '굴비의 고장' 영광의 경관과 문화유적을 한꺼번에 훑어봤으니 말이다. 굴비와 조기매운탕은 영광여행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

지난 9일 큰 딸 슬비와 작은 딸 예슬이랑 함께 영광버스투어를 했다.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광주역 앞에서 출발하는 이 투어는 영광군이 지난 10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하루 일정의 여행프로그램이다.

사흘째 내린 겨울비에도 아랑곳없이 버스는 여행객들로 가득 찼다. 광주역을 뒤로 한 버스는 곧장 불갑사로 달려갔다. 차창으로 떨어지는 비 때문에 바깥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그러나 버스에 탄 여행객들은 일행끼리 이야기꽃을 피워댔다. 슬비와 예슬이도 나란히 앉아서 '디비디비 딕', '보리밥' 같은 게임을 하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광주역을 떠난 게 조금 전 같았는데 어느새 버스가 불갑사에 도착했다.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에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면서 처음 지은 불법도량이다. 불사가 한창이어서 어수선한 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백제 최초의 절을 감상한다고 생각하니 스쳐가는 나무와 기와지붕 하나까지 그냥 흘려버릴 수 없었다.

백제 초전가람 생각하니 가슴 벅차
불갑사에서 나와 내산서원으로 가는 길에 비가 그쳤다. 내산서원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잡혀가서도 조선선비의 기질을 굽히지 않고 그곳에 주자학을 전파한 수은 강항(1567∼1618)선생을 추모하는 곳. 잘 다듬어진 정원에서 드넓은 하늘을 올려다보니 비 온 뒤 더 높게 느껴졌다.

불갑저수지를 배경으로 한 수변공원은 데이트 코스로 좋겠다 싶었다. 빗물에 젖지 않았더라면 물가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분위기를 잡고 싶었다.

수변공원을 한 바퀴 돌고 찾아간 곳은 법성포에 있는 식당. 기대했던 대로 식탁에 영광굴비가 올라왔다. 바삭바삭하게 구워져 나온 굴비는 간간하면서도 속살이 부드럽게 씹혔다. "이것이 진짜 영광굴비 맛이구나" 싶었다. 굴비에다 밥 한그릇을 금세 비우는 아이들을 보니 '굴비가 밥도둑'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았다.

법성포구 빼곡히 늘어선 굴비상점
굴비에다 점심을 먹었는데 법성포구를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바닷바람이 매서웠지만 아이들 손을 잡고 굴비구경에 나섰다. 포구앞 거리에는 200여 곳은 족히 넘어 보이는 굴비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굴비 엮는 작업도 직접 볼 수 있었다.
"아빠! 이것 보셔요. 여기도 굴비, 저기도 굴비…. 전부 굴비에요."

예슬이가 굴비를 엮어서 널어놓은 모습을 보며 '영광이 굴비의 고장'임을 새삼 실감하고 있었다. 코끝이 얼얼해지는 초겨울 추위였지만 지천으로 널린 굴비를 보면서 신이 난 표정이었다. 아마도 굴비로 식사를 하고 나서 매서운 추위도 거뜬한 모양이었다.
"아빠! 근데 왜 영광굴비가 맛있어요?" "글쎄…."

아주 평범한, 그러면서도 갑작스런 슬비의 질문에 잠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기는 다른 데도 많이 있잖아요?" "어! 우리 슬비가 조기로 굴비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럼요. 옛날부터 알았어요." "그랬구나. 아빠 생각엔, 여기 영광앞바다에서 잡히는 조기에 알이 많대. 조기가 알을 낳는 시기에 이곳 앞바다로 들어오다가 잡힌대. 슬비도 그 알을 좋아하잖아." "예∼"

"그래서 여기서 잡힌 조기는 알이 많고 지방이 풍부해서 더 맛있대. 그리고 이렇게 굴비를 엮어서 말리잖아. 이곳의 날씨와 바람도 굴비 맛을 더 맛깔스럽게 만들어준대. 간을 할 때도 천일염을 이용해 옛날 방식 그대로…."

굴비의 본고장 눈과 입으로 확인
슬비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법성포 거리는 아이들한테 영광굴비의 본고장임을 눈으로, 입으로 확인시켜 준 곳이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찾아간 곳은 법성면 진내리 좌우두마을. 마라난타가 중국에서 백제에 불교를 전하면서 처음 발을 디딘 곳이다. 법성포란 지명도 여기서 유래됐다는 게 해설사의 설명. 법성포의 법(法)은 불교를, 성(聖)은 성인인 마라난타를 가리킨다고 했다.

이 곳은 들어가는 길목에서부터 이국적인 풍경으로 다가섰다. 간다라풍의 건축들이 마치 인도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정문을 들어서니 오른쪽으로 마라난타가 물길을 따라 들어왔던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정자가 보였다.

그 옆으로는 넓은 데크가 만들어져 있었다. 아이들이 화장실에 간 틈을 타서 잠시 벤치에 앉아 마라난타가 배를 타고 들어왔을 그 물길을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젖어보았다. 물이 빠져나가면서 드러난 갯벌의 모습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왼쪽으로는 마라난타상과 전시관, 유물관, 부용루, 팔각정 등이 서 있었다. 그 중에서도 거대한 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간다라유물관'이 눈길을 끌었다. 작은 야외 공원처럼 생긴 '탑원'은 발길을 멈추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아이들은 마라난타 존자상이 세워진 108계단을 뛰어오르며 즐겁게 놀았다. 그러면서도 유물관 둘러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언제 봐도 절경인 백수해안도로
원불교의 발상지인 '영산성지'를 거쳐 찾아간 곳은 백수해안도로. 한국의 아름다운 도로 가운데 열 손가락에 꼽힐 만큼 절경을 자랑한다. 도로전망대에 서서 내려다 본 포구의 모습에 감동이 밀려온다. 몇 차례 본 적 있지만 언제 봐도 절경이다.

풍광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그러나 마음에 담는 것이 먼저. 아이들과 함께 계단을 따라 바다의 턱 밑까지 내려가 보았다. 강한 바람 탓에 파도가 거셌지만 도심에서 찌든 마음을 실어 보내는 데는 맞춤이었다. 절벽 아래로 얼굴을 내놓은 형형색색의 바위들도 매력이었다.

해안드라이브 길에 내려다 본 '동백마을'도 익숙한 풍경. 영화 〈마파도〉에 나왔던 그 모습 그대로여서 푸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일정과 날씨 탓에 볼 수 없었던 해안도로의 일몰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염산면 기독교 순교지와 설도항 젓갈시장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영광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영광엔 굴비 말고도 영광을 빛내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았다. 영광굴비를 더욱 맛깔스럽게 만드는 법성포구가 그랬다. 고즈넉한 사찰 불갑사와 이국적인 분위기의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가 그랬다. 백수해안도로의 멋진 드라이브도 영광을 더욱 영광스럽게 만들어주는 풍경이었다.

참가자 직접 체험할 꺼리없어 아쉬움
다만 일정이 너무 빠듯한 게 흠이라면 흠. 단체여행인데다 해가 짧은 겨울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지만, 가는 곳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돌아보기에 바빴다. 참가자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꺼리가 없었다는 것도 아쉬움이었다.

그러나 슬비와 예슬이는 '만족'이란다. 불교 도래지에서 108계단을 오르고, 저수지 수변공원에서 지압로를 걷고, 해안도로에서 바닷가로 내려가 본 것이 좋았다고 했다. 점심도 아주 맛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가 조금 아프다고 했다.

하긴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으니 피곤할 만도 하겠다 싶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희미해지는가 싶더니 금세 캄캄한 밤으로 변했다.
아이들은 또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이번엔 꿈나라로….

이돈삼<광주광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