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인의 蘭과의 만남 ⑬ / 난들의 성생활

벼와 소나무 등 바람을 이용해 화분가루를 날려 수정하는 경우는 풍매화라 하고 검정말과 연꽃, 마름은 물을 이용하며, 분꽃 같이 수술이 암술을 향해 움직여 자기 힘으로 수정하는 꽃들도 있다. 그러나 역시 난들이 벌이는 성생활의 극치는 움직이지 못하는 난초들이 날아다니는 곤충을 불러와 짝짓기 하는 절묘함에 있다.
지중해에 자생하는 사이프러스난은 꽃모양이 암벌의 모습과 똑같이 생겼다. 게다가 교미를 원하는 암벌이 수벌을 성적으로 흥분시키기 위해 만들어 내는 페로몬을 분비하는 것이다. 이에 흥분한 수컷은 사이프러스난에 달라붙어 열심히 교미를 하지만 앞수술에 있던 꽃가루만 머리에 뒤집어 쓴 채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번 다시 안 속으려는 수벌을 또 다른 사이프러스난이 약간 변화된 향기로 유혹해 수벌의 머리에 붙어있던 꽃가루를 획득하여 수정을 완성하는 것이다.
남아메리카 온시디움난은 아주 작은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나 바람에 흔들거리며 침입자로 위장한다. 이에 벌들은 군사를 총동원해 이 침입자를 격퇴하기 위해 저돌적인 공격을 펼치고, 이 용감한 벌들의 군대가 온몸에 꽃가루를 묻혀 이 꽃 저 꽃으로 옮겨 다니며 악전고투를 하는 동안 행복한 성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중남미의 바구니난은 바구니 모양의 주머니에 수벌이 암벌을 유혹할 때 쓰는 향수 같은 물질을 선물로 준비해 놓고, 다시 수벌을 유혹하는 향기를 품어 주머니에 초대한다. 향기에 현혹돼 온 수벌은 암벌에게 줄 선물을 모으느라 정신이 없다가 미끄러운 바구니 속으로 빠지게 된다.
바구니난은 수벌이 어렵게 터널을 빠져 나올 때 수벌의 등에 배낭처럼 꽃가루 뭉치를 두개 달려 보낸다. 수벌은 다시 다른 바구니난의 속임수에 걸려 똑같이 터널을 통과하게 되며, 이때 그 터널에는 수벌의 등에 달린 꽃가루를 떼어낼 갈고리 모양의 장치가 있어 무난히 꽃가루를 회수해 수정을 마치는 요술을 부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거울난은 암벌이 머리를 아래로 하고 꽁무니를 위로 추켜올린 성행위 모양으로 피어나 수벌을 유혹해 수벌이 왔을 때 머리에 꽃가루를 묻혀 수정하고, 노란벌난은 똑같은 암벌의 모양이지만 반대로 머리를 위로한 모습으로 피어나 수벌 꽁무니에 꽃가루를 묻혀 수정한다. 결국 이 두 난초는 수벌의 몸을 양쪽으로 다 이용하는 지혜로운 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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