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당골칭찬릴레이 - 김수열씨 / 묘량면
“선생님 가르침이 오늘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사람과의 부대낌, 더하기보다 빼기가 많을 법한 요즈음 세상에 누군가의 삶에 큰 은혜를 줬다면 그 보다 값진 것이 있을까? 장암산 밑자락에 자리잡은 묘량면 효동리 미산마을. 조금씩 봄내음이 느껴지지만 아직 날이차다. ‘
미산’이란 이름처럼 마을 뒤를 감싸안은 산모양이 예쁘다. 파란지붕집, 노어르신은 집마당을 지키고 있다.
기자가 혹여나 길이나 잘 못들까 봐 나와 서성이는 마음쓰임이 참 따뜻하다. “어이구 어서와요. 내가 뭐 내세울게 있어야지”라며 반갑게 맞이해 주는 김수열 (77)씨.
앞서 걷는 걸음이 불편해 보인다. “내가 지금 뇌경색이요. 한 3년 그랬지” 2004년 초, 갑자기 찾아온 병환은 활동하기 좋아하는 할아버지를 집에 만 묶어 놓고 있다.
“전에는 내가 한달이면 한 20일은 집밖에 있었어. 영광에 큰 제사는 다 댕겨으니께” 한자와 제례의식에 밝은 김 씨는 향교 유림으로서 영광관내 큰 제사와 각 문중제사에 불려다녔다.
“2천평이나 되는 논농사를 나이먹은 우리 안사람 혼자 지으니 속이 편치가 않아.” 더불어 평생 지어온 농사일도 이제 할머니 몫이 돼버렸으니 항상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어려서 집에서 학교를 보내지 않았었지.” 일제말 유년시절을 보낸 김 씨는 정규학교과정을 못 밟는 아쉬움을 밤에 다닌 야학서당으로 대신해야 했다. 그렇게 효동마을에 있던 삼효개량서당을 3년여 다니다 해방을 맞았다.
“나이먹어 익힌 한자는 금방 까먹는데 어려서 배운 한자는 잊어 먹들 못혀.” 어느덧 유년시절 익혔던 한자가 어린 후학들을 가르치는 재산이 됐다. “70년도에 동네 사랑방에서 30여명의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어.” 지식을 단순히 알고 있는 것 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것하고는 또 다르다.
“가르치는 재주가 있었던지. 아이들이 쉽게 익히고 재미있어 하더라고.” 그렇게 한자교육과 인연을 맺은 김 씨는 향교에서 그리고 문화원에서, 또 초등학교에서, 방학 등을 이용해 명신보감, 사자서학 등을 가르쳤다.
“단순히 글을 익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교훈을 찾고 인생 공부를 가르쳐야해.” 살아오며 아이들 가르치던 것이 제일 재미있었다던 김씨, 단순 지식이 아니라 삶의 가치와 기준을 가르치고 싶었단다.
“배움이란 끝이없어.” 논어에 ‘일흔에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해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라는 구절이 있다. 77세의 김수열 씨, 그는 지금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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