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의회 운영위원 러시아 북유럽 연수기 ④

중국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후 노르웨이 민족작가로 명성을 떨친 그리그의 생가를 방문하기 위해 출발했다. 1843년에 태어나 1905년에 세상을 떠난 그리그는 천재적인 음악성을 띠었으며 독일, 덴마크 등에서 음악공부를 마치고 본국에 돌아 와서 고국의 자연과 보수적인 민족의 마음들을 음악에 담아 수없이 많은 작곡을 남겼다고 한다. 그중 솔베지송은 현재도 세계인에게 널리 알려진 곡들이다.
솔베지음악에 빠지게 되면 쌓인 스트레스, 원망했던 마음 등이 모두 사라지면서 심장의 안정을 돕는 편안한 음악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사회보장 확실한 나라 덴마크
해안도로를 잠시 버스로 돌면서 노르웨이의 1박 2일 일정을 마치고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가기 위해서 베르겐공항으로 출발하였다. 비행시간이 오후 4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스칸디나비아 3국을 모두 여행하고 이제는 EU국가인 덴마크, 낙농업으로 세계적인 경제강국으로 불리는 덴마크를 연수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북유럽은 11월부터 낮은 짧고 밤은 길다고 한다. 코펜하겐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10분이었는데도 밖은 컴컴한 밤중과 같았다. 출국수속과 입국수속은 비행기표 하나로 모든게 해결이 됐다.
공항밖에는 덴마크를 안내해 줄 덴마크 교포 정명희 가이드가 나와 있었다. 여수출신으로 외교관 남편을 따라 덴마크에 와서 정착해 버린 5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덴마크의 생활이 벌써 32년째 접어든다고 했다. 덴마크는 외국의 이민을 받아 주지 않는 나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회보장이 너무나 잘되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외국인의 이민은 힘들다고 한다.
한국교포는 여성이150명, 남성이 50명 정도와 있으며 월드컵 4강이후 한국의 삼성이 처음 덴마크에 진출했으며 차량을 제외한 모든 제품은 자국에서 생산하여 세계적인 제품으로 만들어 수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기업의 진출은 매우 힘들고 까다롭다고 한다.
이 나라는 의료공학이 매우 발달한 나라이며 건강식품의 개발은 세계 으뜸이라고 한다. 간단한 덴마크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니 벌써 저녁을 예약한 변두리 서울식당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간판은 서울식당이고 한식을 하지만 주인은 중국사람이라고 했다. 한국에서의 짧은 식당경험을 토대로 덴마크에 한식당을 운영하는데 한식보다는 덴마크식 퓨전음식을 하며 한국관광객들을 위해 한국음식을 제공한다고 한다.
김치찌개에 석식을 든든히 하고, 투숙할 Scandic Hotel에 도착했다. 객실 배정을 받고 객실에 들어와 짐들을 풀고 호텔내에 있는 건강 단련실을 찾았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헬스클럽과 사우나를 말한다. 사우나실은 핀란드식 사우나였다. 3평 규모의 한증막실에 샤워기 하나, 이러한 사우나방식이 북유럽국 사람들은 몸에 베여 있기 때문에 우리의 목욕방식과는 다르다.
우리는 입욕방식이지만 이 사람들은 건식 방식에 의해 땀을 배출하는 것이다. 아침이 다가 왔다. 11월5일 5시30분이었다. 이곳 또한 아침해가 8시경에 떠오른다. 7시경에 호텔내의 뷔페식을 마치고 가벼운 산책을 한 후, 덴마크 역사관광지를 탐방하기 위해 출발하였다. 창밖으로 스산한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덴마크는 평균 1주일에 2번 정도는 비가 내리는 기후조건이라 한다. 우리 일행은 또 덴마크연수를 빗속에서 시작해야 했다. 덴마크는 1843년부터 기차로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했고 2,002년에는 전철이 개통되었으며, 시민 35%가 자전거를 이용한 출·퇴근이 이루어 진다고 하였다.
수도인 코펜하겐의 시내를 다니면서 느낀 점은 북유럽의 건축양식들 대부분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화강암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건축물이기 때문에 지구의 종말이 오는 날까지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화가암으로 만든 건축물 특색
1161년부터 바다를 매립하여 하나씩 건물을 세운게 바로 코펜하겐 시며, 그래서 천년의 도시라고 한다. 왕궁과 국회의사당, 왕립박물관 등의 웅장함은 덴마크인의 포부와 웅지를 알수 있었다. 이들 조상 또한 바이킹의 후예들이다.
1913년에 바다를 등지고 육지를 바라보며 임을 기다리는 인어공주의 조각상을 보았다.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임을 기다리며 덴마크에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이는 인어공주 조각은 세월의 흐름속에 이제 한쪽 눈이 빠져있는 형상인데도 관광객은 계속해서 찾아온다고 하였다.
보잘 것 없이 생긴 조각이지만 안데르센 동화에서 어린 동심을 가슴아프게 하였던 작품이기 때문에 이 동화를 읽어본 세계인들은 한번쯤 동화의 현장을 보고 싶은 호기심에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덴마크는 안데르센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점심을 들고 난후 풍력을 이용한 동력발전소를 견학하였다. 전봇대 2개 크기에 3개의 날개를 이용해 꾸준히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일정하게 돌아가는 기후조건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덴마크인의 지혜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덴마크를 통치하고 지배해 왔던 왕들의 태생지를 둘러보았다. 깔끔하게 다듬어 놓은 정원수와 주변의 경관들은 무릉도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들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다시 버스를 이용해 덴마크의 전형적인 시골의 풍경을 보기 위해 출발하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유채 밭하며 목초지들, 산이 없어 평야로 만 되어 있는 지형들을 적절하게 이용하였고, 덴마크 농부의 아버지라 일컫는 달가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조용하고 풍요롭게 보이는 시골의 풍경이었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유채기름들은 항공기의 대체 연료로 사용하며, 아직은 자동차에는 사용하지 않는 다고 한다.
아마도 자동차 공장이 없기 때문에 자동차에 사용할 연구를 하지 않은 것 같다. 아울러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국가들은 가족 중심단위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으며 대인관계는 그리 정겹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혈통을 보존하기보다는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받고, 개인의 행복과 삶을 추구하는 자유분방한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낮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벌써 창밖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오후 4시30분이면 밖이 컴컴해지는 관계로 오후 5시에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다시 돌아왔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 짐을 정리하고 오전 덴마크시내를 구경한 후 오후1시에 독일의 푸랑크푸르트로 출발한다고 하였다.
군대 의무아닌 선택으로 결정
아침이 다가 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산책을 한후, 호텔 내의 뷔페식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일정은 코펜하겐 시청을 방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11월6일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코펜하겐 시내 중앙에 위치한 중세기 건물의 웅장함이 한눈에 들어 왔다.
시청 안으로 들어가면서 100m높이의 E.V와 300개의 계단을 이용한 옥상, 시민들의 휴게공간을 위해 1층 건물안을 안락하게 꾸며 놓은게 특징이었다. 예약이 안된 관계로 시청 관계자는 만나지 못하고 다음은 현재 왕이 사는 곳으로 향했다.
덴마크는 바람의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아침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쉴새 없이 불어 왔다. 덴마크의 젊은이는 7개월의 군대 생활을 하며,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의무가 아니고 선택인데 이 또한 응모 비율이 엄청 세다.
제비뽑기를 하여 낮은 숫자를 선택한 사람이 군대에 가는데 급여는 월 170만원 정도라 한다. 또한 병원이나 양로원 등 사회복지시설 및 국가기관에서 근무하는 것도 군대생활로 인정한다고 한다.
다음은 풍력발전소가 보이는 해변가 부두로 이동하였다. 1951년 1월23일부터 1953년 9월16일까지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부상자 치료 및 질병치료에 큰 활약을 하였던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호의 한국전 참전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 앞에서 묵념을 하고 그 분들의 고마운 마음과 숭고한 정신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덴마크의 일정을 모두 끝마치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가기 위해 덴마크의 코펜하겐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오후 3시10분 비행기였다. 1시간10분동안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독일을 안내할 현지가이드 신 국이라는 젊은 청년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경상도 말씨에 입담이 구수한 가이드였다. 유럽 제1의 국제공항인 프랑크푸르트는 1일 1,500대의 비행기가 들고 나가는 연간 5천만명이 이용한다.
독일의 인구는 8,200만명으로서 유럽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나라이며 1990년 10월3일 서독과 동독이 역사적인 통일을 이루었다. 수도는 베를린이지만 정치적 상징적인 도시이며, 경제적 수도로 불리는 곳은 바로 독일의 관문인 프랑크푸르트라고 한다.
9박11일간 연수를 마치고
도착한 숙소는 매리어트호텔이었다, 마지막 연수국가라는 생각에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밀려오면서 깊은 숙면에 들어갔다. 아침 일찍 호텔내의 뷔페식을 마치고 프랑크푸르트 시청을 견학하기 위해 출발하였다. 프랑크푸르트 시청은 중세기 왕을 선출하는데 사용했던 건물로서 왕이 선출이 되면, 왕관모양의 베란다에 나와 시민에게 인사하는 곳으로 한국인 처음으로 이 베란다에 섰던 사람이 축구선수 차범근 감독이라고 한다.
주변의 건물에 창문이 많은 것이 특징인데 왕의 선출 인사를 보기 위해 창문을 많이 만든 건축양식이 특이하였고, 이로 인해 창문세금이 만들어 졌다 한다.
황제의 대관식을 치르는 카이저성당의 높이는 97m이며 천년이 넘은 성당이다. 성당내부 구조는 그리스형 십자가로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7,000여개의 파이프오르간과 천둥소리보다 큰 소리에서 미세한 소리까지 내는 23t의 청동종, 즉 고음과 저음이면서 멀리 퍼져 나가는 종소리를 낸다.
6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하이델베르그 대학과 라인강을 끼고 1km반경 내에 400여개의 은행이 있는 금융·상업도시이다. 르네상스식 건물의 오페라 장은 2차대전때 많이 부서져 시민들이 기금을 조성해 원래 대로 복원한 건물이다.
무제한의 속도를 내는 아우토반(고속도로)으로 들어 와서 350년간에 걸쳐 지은 하이델베르그의 고성을 견학하였다. 이제 모든 연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향하였다.
9박11일간 북유럽 사회복지국가 연수를 다시 한번 회상해 보면서 사회복지가 잘 되려면 개인의 복지보다는 사회의 복지를 위하여 부의 재분배가 꼭 필요하고 세금의 자율납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한국행 KAL기에 몸을 실었다.
저작권자 © 영광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