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사고 보도에 대한 단상
대구 지하철사고 보도에 대한 단상
  • 영광21
  • 승인 2003.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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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사고가 발생하자 언론은 한국사회의 안전불감증을 강하게 질타했다. 철저한 재난대비책도 세우고, 안전점검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대구 지하철사고와 같은 재해는 안전설비를 제대로 갖추고, 재난대비훈련을 충실히 한다고만 해서 예방할 수 있는 사고가 아니다. 자신의 고달픈 처지를 외면하는 주변사람에 대한 분노가 무차별 범죄로 이어진 불행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구 지하철 참사를 다룬 언론보도 중에는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고 존엄성을 모독하는 보도가 적지 않았다. 사고 소식을 전해듣고서도 방송사들은 여전히 오락프로그램을 방영했고, 생지옥에서 간신히 빠져 나온 부상자들에게 기자들은 거침없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댔다.

가장 모욕적인 것은 희생자들의 생명에 값을 매기는 보도였다. 사고발생 다음날, 미처 사망자의 신원과 숫자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언론들은 희생자 1인당 보상받을 수 있는 액수가 얼마라고 상세하게 보도했다.

한국 언론은 보상금 계산에 그치지 않고, 성금 모으기 경쟁까지 벌였다. 9시 TV뉴스가 끝나면 액수의 크기에 따라 성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과 사진이 화면을 스쳐 지나갔고, 신문지면 역시 성금액수의 자릿수 순서대로 기부자의 이름이 실렸다.

그러나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에게 시급한 문제는 돈이 아니었다. 삶의 보금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물질적인 지원이 우선이겠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의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시신을 수습하고 실종자를 확인하는 작업이 훨씬 시급했다.

이를 위해 언론이 담당해야할 몫은 왜 이런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는지 국민들로 하여금 깊이 성찰토록 하는 것이다. 대구 지하철사고가 자신의 어려움에 무관심한 사회에 대한 원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결국 곤궁하고, 차별받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관심을 보이고 배려해야겠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또 다른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도 반성하고 변해야 했다. 한국사회에서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이유 중에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보다는 잘 나가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큰 관심을 보인 언론 탓도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구 지하철 참사를 보도하면서 조차도 언론은 과거의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지난 3월4일자 조선 중앙 동아 세계 국민 대한매일 등 주요신문에는 서울대에 합격한 후 대구 지하철 사고로 목숨을 잃은 한 여학생의 애절한 사연이 실렸다. 문제는 유독 그 부모의 고통을 강조한 언론의 보도 태도이다.

대학에 입학하는 자녀를 잃은 부모의 슬픔에 관한 보도가 아니라, 일류대에 합격한 딸을 잃어 애통해하는 부모에 관한 보도였기 때문이다. 희생자가 만약 재수생이었다면, 지방대학 입학 예정자였다면 그렇게 여러 신문과 방송에서 일제히 보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일부였긴 하지만 한국언론은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들에게까지 학벌주의 잣대를 들이대고 차별한 것이다.

낮고 어두운 곳에서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는, 돈과 권력 주위를 하이에나 떼처럼 맴돌아온 한국언론에게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일까? 대구 지하철참사 만큼이나 한국언론이 부끄럽다.
장호순 교수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