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나 권력을 가진 이들의 사회적 책무 절실할 때
부나 권력을 가진 이들의 사회적 책무 절실할 때
  • 영광21
  • 승인 2007.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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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도층 일반인보다 높은 도덕적 정신적 덕목 필요
우리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지만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감은 여전히 낮아 보인다.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의상의 의무를 우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고 한다.

고귀한 신분에 따른 윤리적 의무. 사회의 지도적인 지위에 있거나 여론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도덕적·정신적 덕목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속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는 일반인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게 마련이며, 그러한 행동에 따라 상류층 사람들을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거나, 깊은 박탈감을 주게된다.

최근의 병역비리와 재벌회장의 행태에서 철학과 도덕성을 갖춘 진정한 상류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마다 역사와 과정은 다르지만 사회지도층들이 국가와 사회에 대한 도덕적 책임의 역사적 일화를 보면,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제국의 2000년 역사를 지탱해준 힘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이라고 지적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
로마의 귀족은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스스로 전장의 선봉에 서서 용감하게 적과 싸웠다.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벌인 16년간의 제2차 포에니전쟁중 최고 지도자인 콘술(집정관)의 전사자 수만 해도 13명에 이르렀다. 한 전투에서 전체의 1/3이 죽은 적도 있었다.

스키피오 장군도 전투에서 부친과 삼촌들이 모두 전사했다. 로마 귀족들은 이처럼 전쟁에서 앞장서는 것은 물론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검소한 삶을 살고 과소비를 하지 않았으며, 부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지 않았고, 정신적 가치를 더 소중히 여겼다.

둘째, 러·일 전쟁 당시 일본군의 총사령관 노기 장군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싸운 해전(海戰)의 첫 전투에서 본인은 승리의 영광을 얻었으나, 3만명의 전사자 가운데 중대장과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두 아들을 한날한시에 잃어버리는 아픔을 겪어야했다.

셋째, 6·25전 당시 참전 외국군을 살펴보면 지도층의 솔선수범을 쉽게 찾아 볼 수가 있다. 미국만 해도 120여명의 군 최고 지휘관 자제들이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Korea라는 나라의 최일선에서 싸웠고 30여명은 전사까지 하였다. UN군 총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인 밴플리트 2세도 공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격추당해 생을 마감했다.

넷째, 6·25전 당시 중국의 모택동의 장남인 모안영은 폭격으로 전사를 했다. 참전 당시 신혼이었는데 며느리가 시신만이라도 가지고 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했음에도 모택동이 일반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있는 중공군 묘지에 매장하도록 했다.

스스로를 낮춘 민중의 삶
다섯째, 모병제인 영국왕실의 남자들은 모두 군 복무를 자원했다. 최근 왕위계승 서열 3위인 해리 왕자가 이라크 전선에 자원했고, 삼촌인 앤드류 왕자도 1982년 포클랜드 전쟁때 헬기조종사로 참전했었다.

여섯째, 베트남을 프랑스의 식민지배에서 독립시키고 미국과 싸웠던 호치민은 국가의 실질적인 통치자였으면서도 너덜너덜한 외투와 다 떨어진 고무신을 끌고 다니며 어린이들과 놀아주는 등 눈물겨울만큼 스스로를 낮추고 민중의 삶과 평생 함께 했으며, 1969년 79세의 나이로 죽으면서 자신의 시체 때문에 한 뼘의 농지도 낭비할 수 없다며, 화장시켜 작은 단지 안에 담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베트남인들은 자신들의 영웅 호치민을 방부 처리해 영원히 전시 보관하고 있다.

일곱째, 헤즈볼라 지도자인 셰이크 하산 나스랄라는 1997년 9월13일 당시 18세이던 아들 하디가 이스라엘군과 싸우다 죽었을 때도 연설 일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눈물을 흘리는 대신 "오늘 아들이 죽었다"고 운을 뗀 뒤 "이제 아들을 잃은 다른 부모의 눈을 부끄럼 없이 쳐다볼 수 있게 돼 자랑스럽다" 고 말했다.

당시 레바논의 다른 이슬람 지도자들은 자녀를 안전한 유럽으로 보내는 것이 관례였는데 그는 달랐던 것이다.

사회지도층의 의미는...
우리나라 현대사에서는 이런 예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겸양해 감추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찾기가 힘들다.

수많은 외침시 많은 민초들이 희생을 감수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남의 나라의 귀한 자식들이 참전하여 죽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도층들이 솔선수범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위험한 전쟁터 그것도 최일선에 보내고 싶겠는가? 그들은 원한다면 자신의 자식을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권력의 힘으로 보호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공과 사를 구별하여 어떻게 처신을 하여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어려운 곳에 자식을 보냄으로써 솔선수범을 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가진 사람들의 책무
기본적인 본능인 슬픔을 억제할 수 있는 아니 감출 수 있는 용기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사회지도층의 행동철학인 셈이다.

물론 세상이 변하면서 사회지도층의 의미도 달라져 왔고 그들의 책무도 달라졌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명실상부한 귀족의 존재가 사라진 지금 노블레스의 자리는 권력을 가진 자와 재력을 소유한 자본가에 의해 채워지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이나 왕족의 책무가 아니라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의 책무인 셈이다.

황흥만
<영광읍예비군중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