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언제부턴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사회 양극화며 신자유주의, 고령화사회 등의 단어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그만큼 그런 단어가 주변에서 우리의 귀와 눈을 은연중에 면역시키고 있다는 증거라고 하겠다. 요즈음 살기가 힘들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전혀 내일을 예측할 수가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40대 후반에 이르면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기 마련인데 지금은 그 나이에 사람대접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를 걱정할 정도이니 보통 찜찜한 것이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그나마 경제적으로 약간의 혜택을 받은 동네라서 다른 곳에 비하면 크게 쪼들리지 않는 지역에 해당한다고 하지만 교육문제나 노후문제에 대해서 자신있는 사람은 그리 흔하게 볼 수 없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는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을 분류할 때 20%:80%의 비율로 구분한다.
실제로 이런 구분이 현실과는 아주 동떨어지게 잘못되었지만 부족한대로 백보를 양보해서 그대로 인정한다고 치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상위계층이라고 하는 20%의 영역에 해당하는 사람들마저 이런 불안감을 가지고 있을진대 나머지 평범한 측에 속한다고 하는 80%의 사람들이 느끼는 심정이 어떨까를 생각하면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병원비는 병원비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살면서 적지 않은 의미를 두는 자식들의 교육은 어떠한가. 평준화니 공교육이니 하면서 교육부 장관에서 대통령까지 나서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에 희망을 버린 지는 오래되었다.
다른 집 애들 전부 보내는 학원에 내 애만 안보낼 재주가 없어진 것이다. 학원에 간다고 지금보다 더 잘 할 것을 기대해서 학원에 보내는 것이 아니고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그것이 새로운 소외현상이 돼버렸기에 할 수 없이 보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대학등록금을 내는 것도 허리가 휘는 일이다.
대부분의 정치권과 관료들은 그들이 하는 행태로 보아서는 국민들의 불안 해소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때가 때인 만큼 근래에 와서 대권주자로 예상되는 사람들이 가끔 양극화해소 운운하지만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측으로 회전하는 것 같아 그저 쓴웃음만 나올 뿐이다.
지금의 정치권과 관료들에게서 더 이상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거창하게 정치권과 관료들을 들먹일 것도 없다. 가까이 있는 공무원에게서도 우리는 아무런 희망을 보지 못하고 있다. 얼마전 추자도에서는 '추자도 참조기굴비'라는 브랜드로 여태껏 영광경제의 큰 축을 지탱해 온 굴비에 정면도전을 하고 나섰다.
물론 행정의 수장인 군수가 자유롭지 못한 지경에 있어서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추자도가 던진 황당한 도전장에 전혀 대응을 하지 않은 영광군청과 전라남도의 처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공무원의 존재가 크게는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고, 작게는 지역민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만 알았다고 하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기 전에 깊이 반성하고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기를 감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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