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불감증이 초래한 재앙은 이제 그만
안전불감증이 초래한 재앙은 이제 그만
  • 영광21
  • 승인 2007.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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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여전 외신을 통해 본 온몸에 기름이 범벅된 시꺼먼 새의 사진을 보았을 때만 해도 말 그대로 먼 나라 얘기였다. 흑해 연안에 유조선이 난파되면서 새어나온 기름으로 해안선이 오염되고 수만마리의 새가 기름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죽어가는 모습이었다. 죽음의 바다로 변해가는 흑해와 그 북쪽 아조프해의 재앙 현장이 며칠에 걸쳐 외신을 통해 전해졌지만 흉측한 사진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 사진은 사실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충남 태안군 앞바다에서 유조선이 크레인 바지선과 충돌하면서 기름이 쏟아져 나와 초래된 재난이다. 바다의 숨통을 차단한 기름띠는 수백㎞에 걸쳐 확산되면서 김, 굴, 전복 등의 양식어장을 폐사시키고 있다. 바다가 생활터전인 어민들은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꾸려갈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탄다.

사고 발생 초기 예측과 달리 최악의 해양오염 사고로 번져가고 있다. 인력과 장비가 속속 투입되곤 있지만 사고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유출된 기름 양이 지난 95년 여수 앞바다에서 일어났던 씨프린스호 사고 때보다 두 배가 넘는데다 초기 대응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기름유출에 의한 해양오염은 사고지역 바다와 해안가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름이나 기름에 포함돼 있는 유해 성분들이 물고기나 바닷새들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단기적인 영향도 문제이지만 기름이 가라앉아 쌓이거나 분해가 잘 되지 않는 성분들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장기적인 영향이 더욱 큰 문제이다.

기름 유출로 한번 오염된 바다의 생태계는 원상으로 회복되는데 10년 이상의 긴 기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특히 생태계의 보고인 개펄이 회복되기까지는 이보다 훨씬 긴 기간이 필요하다.

국토의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수출입 물동량의 90% 이상을 해운에 의존하고 있고, 해마다 해운을 이용해 수입되는 원유만도 9억 배럴에 이른다. 그만큼 기름유출 사고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아직 기름유출 사고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씨프린스호 사고이후 방제업무를 해양경찰청으로 일원화하고, 사고 발생 사흘 이내에 걷어낼 수 있는 기름의 양을 의미하는 국가방제 능력도 95년 1,300톤에서 1만6,600톤으로 늘렸다.

방제능력의 확대도 중요하지만 사고 발생시 발빠른 대처와 예방대책이 우선돼야 한다. 이번처럼 해상크레인이 유조선과 충돌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되지 않도록 법적 규제정비가 시급하다. 또한 유출된 기름의 확산에 대한 예측이 빗나가 초기대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확산경로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현재 기름제거작업은 인력으로 비닐포대나 양동이 등에 해안으로 밀려든 기름을 퍼서 담아 해안가에 임시 모아 두는 원시적인 방법에 그치고 있어 파도를 따라 밀려드는 기름을 감당치 못하고 있다. 작업복과 고무장갑을 끼고 기름제거 작업을 하고 있는 한 어민이 "바닷물을 삽으로 퍼내는 격이다"며 끝없이 밀려드는 기름을 보며 허탈해 하는 모습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이 일이 남의 일이 아닌 까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