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쩌란 말인가 이 아픈 가슴을
아 어쩌란 말인가 이 아픈 가슴을
  • 영광21
  • 승인 2008.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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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나 방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 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 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 씨가 달려와 문을 열었을 때, 다섯 살 혜영 양은 방바닥에 엎드린 채, 세살 영철 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박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수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 노래 하나가 있었다.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이 바로 그 노래다. 어려운 형편의 일용직 부부가 힘겹게 키우던 아이들의 죽음을 소재로 다룬 이 노래는 실제 사건에 근거해 작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난이 부른 죄 없는 아이들의 참혹한 죽음에 적지 않은 이들이 안타까움에 젖어 스스로의 가슴을 쳤다.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 저편의 이야기다.

하지만, 정태춘의 노래에 담겨있던 ‘일용직 노동자’의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놀랍지만 그게 현실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로 불리는 21세기 한국에서 일용직과 비정규직 문제는 언제라도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스런 뇌관이었다. 그리고 그 뇌관이 2008년 1월 7일에 드디어 터지고야 말았다.

이날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냉동물류센터 ‘코리아 2000’에서 발생한 화재는 수십 명의 소중하고 귀한 생명을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갔다.

불에 타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된 시신을 번갈아가며 작은 흔적이나마 찾기 위한 몸부림은 밤을 새며 계속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오열을 멈추지 않았다.
‘냉동창고’라는 나름대로 안전하고 편한 곳에서 작업을 한다고 생각했던 이번 희생자들의 대다수가 일용직 노동자 또는 외국인 노동자였다고 하니 더욱 기가 막힌다.

최근의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저임금과 고강도’ 그리고 죽음의 위험까지 무릅써야 적은 돈이라도 벌 수 있다는 처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사건을 통해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의 슬픔이나 놀라움에 공감할 것이다.

이번 화재로 사망한 중국동포는 13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들이 살던 정든 곳을 떠나면서 ‘가족과 함께 보다 나은 삶을 살아 보겠다’는 소박한 소망 하나로 국경을 넘어 온갖 고난을 극복했던 그들의 아픈 다짐은 간 곳이 없고, 오늘은 원망에 찬 싸늘한 시체만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슬프고도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2003년 통계청 조사자료에 따르면 일용직과 임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사망위험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가치 중에서 인간의 생명보다 고귀한 가치란 있을 수 없다.

일용직의 생명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노동자의 권익을 찾아주겠다"고 때마다 공언해온 정치권과 "근로자는 가족과 마찬가지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온 기업인들이 '일용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에 진지한 태도로 나서야하는 확실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