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칼럼 - 편집인 박찬석
사리에 꼭 맞아 인생에 대한 교훈이나 경계가 되는 짧은 말인 격언 중에는 ‘권력과 명예와 돈은 한식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있다. 그만큼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돈은 상식적인 방법으로는 많이 모으기 어렵고, 명예란 상식을 벗어난 인품을 가까이하지 않기에 생겨난 말인 것 같다. 그래서 권력을 이용해 돈을 쌓고 돈으로 명예를 사보았자 언젠가는 무너질 모래성이 되고 마는 것이다.
최근 박철언 전 장관이 170억 원대의 엄청난 돈을 뜯겼다며 송사를 제기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자신의 차명 통장을 관리해 오던 사람들이 돈을 돌려주지 않고 가로챘다는 것이다. 새삼 돈과 권력과 명예의 허무한 동거를 떠올리게 한다.
세간의 관심은 돈의 액수와 성격에 쏠려 있다. 그동안 정권이 몇 번을 바뀌었는데도 그가 그렇게 많을 돈을 갖고 있었고, 이제야 그 돈의 성격이 얘기되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들 놀라서 혀를 내두르고 있다. 때마침 그가 기업체로부터 거액의 비자금을 받아 관리했다는 얘기까지 측근의 입을 통해 불거져서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한다. 본인은 재단설립을 위한 유산과 협찬금이라고 극구 해명하지만 썩 개운치 않다.
잘 알다시피 박철언 씨는 노태우 정권인 6공의 황태자라 불렸던 이른바 권력의 실세였다. 그런 그가 세간의 입방아를 무릅쓰고 돈을 찾겠다고 나선 절실한 속사정이 무엇일까 많이 궁금하다.
거액을 수십 개의 차명 계좌에 나눠 관리해왔다는 사실이 우선 도덕적으로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떳떳한 돈이었다면 왜 여태껏 감춰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앞선다.
더구나 그 시절 대통령들은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감춰놓았던 사실이 들통 나서 법원으로부터 추징금을 언도받았지만 아직까지 다 갚지 않고 있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당시의 권력층 가운데는 재산을 남의 이름으로 숨겼다가 꼼짝없이 빼앗긴 경우가 더러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
권력과 명예와 돈을 다 차지하려다 몰락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거액의 돈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상 그것이 깨끗한지 아닌지를 국민들에게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정치자금법상의 공소시효 등 법적인 잣대와는 별개로 어떤 형태로든 밝혀져야 할 문제다. 권력과 명예와 돈이 한식구가 될 수 없다는 진실을 국민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거창한 논리를 동원할 것도 없이 상식적으로 따져볼 일이다. 깨끗한 돈이라면 굳이 차명계좌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진상이 분명하게 밝혀져서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과거를 정확하게 정리하여 밝은 미래를 여는 계기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인 것이다.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연단에 오르는 자는 속옷을 잘 챙겨 입어라”는 말이 있다. 연단 위의 사람은 금세 또는 언젠가는 발가벗겨지기 쉽다는 뜻이다. 이 말은 비단 지난 정권만이 아니라 오늘의 권력자들도 귀담아 들어야 할 교훈이 아닌가 싶다.
박 찬 석 / 본지 편집인oneheart@yg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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