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어린이 상대 흉악범죄를 계기로 피의자의 인권을 어디까지 지켜줘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어설픈 관행 뒤에 숨어있던 요구가 돌출된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장검증 때마다 마스크를 벗기라고 분노하는 피해자 가족과 주민들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피의자의 초상권을 지키는 경찰의 직무규칙이 버티고 있어서 항상 서로 대치하게 마련이다. 확정 판결까지는 무죄추정이라는 원칙에 근거해 지난 2005년 제정된 훈령의 내용에 충실하다보니 빚어진 현상이다. 답답하기도 하고 당혹스러운 일이다.
경찰은 CCTV에 찍힌 일산어린이 사건용의자를 공개했다가 붙잡은 뒤에는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 씌웠다. 과연 합당한 조처인지 아닌지 아리송하다. 특히 그는 같은 죄로 10년을 복역한 전과자였기에 더욱 그렇다.
용의자의 얼굴공개 논란은 적법한 벌을 주되 인격권까지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와 국민의 알권리사이의 갈등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 인권 선진국들도 흉악범을 공개하는 마당에 범죄예방을 위해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 국민 대다수의 정서다.
형사사건의 피해자는 사실 국민 모두다. 그런데도 용의자는 끝까지 얼굴을 가린채 사라졌다가 새로운 사건의 피의자가 돼 다시 등장하곤 한다. 그 결과 피해자와 가족들은 가혹한 고통에 시달리고 주민들도 불안에 떨어야 한다.
피의자 인권보호는 과거 국가 형벌권의 남용에서 비롯됐다. 국가 형벌권의 남용을 어디까지 볼 것인가는 아직도 논의가 진행 중이다. 논의의 핵심은 보편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특정한 인간행위에 대해 그것이 불법이며 범죄라는 이유로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해 규제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도덕률에 맡길 것인가로 모아진다.
이 문제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가 맺는 상호관계를 함수로 해 시간과 공간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결국 그 사회의 시대적 상황이나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파렴치범에게도 혜택을 주자는 말은 아니다.
현대 형사사법제도가 피의자의 인권을 꾸준히 넓혀 오는 동안 피해자는 뒷전으로 밀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지난 60년대부터 다시 피해자의 인권에 눈을 돌렸다. 우리는 겨우 2년 전에야 피해자 보호법이 생겼고 올 초엔 대검에 피해자 인권과가 신설됐다.
흉악범의 신상공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4년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 때도 논란이 뜨거웠지만 원칙론에 밀려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그랬다가 또 같은 사건이 나자 여론이 들끓게 됐다.
지난해 일어난 어린이 성범죄는 천건이 넘는다. 그중에 절반 이상이 재범이었다. 최소한 재범이라도 막을 수 있는 정보는 국민에게 제공돼야 할 것이다. 피해자의 안전을 피의자의 인권보다 소홀히 해도 좋다는 사람은 없다. 진지한 사회적 논의와 개선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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