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참하게 무너진 허울좋은 실용외교
무참하게 무너진 허울좋은 실용외교
  • 영광21
  • 승인 2008.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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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 박찬석 편집인
일반적으로 국가는 인간이 만든 가장 큰 이익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간의 관계에는 늘 충돌과 이견이 따를 수밖에 없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이견과 갈등을 애써 피해간다고 해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역사 속에 담겨진 국가와 국가간의 수많은 관계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젠 없었던 일로 하자’고 선언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정리되거나 덮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후에 처음으로 가진 해외 순방인 미국과 일본방문의 결과를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한미, 한일간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이견의 골을 깊게 하거나 동상이몽으로 새로운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을 곳곳에 남겼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과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 원론적인 반응만 보였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의 자존심까지 던지며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는 위험천만한 행적과 발언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 정치인들이 틈만 나면 들고 나오는 ‘망언’과 관련해 “물론 정치인은 가끔 거북한 발언을 한다. 그러나 정치인이 발언하는 것을 일일이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다.

어느 나라나 정치인은 개인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며 오히려 일본이 과거 침략사를 정당화하거나 독도주권을 침해하는 등의 망언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것을 실용으로 보아야 할지 허세로 보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미국 방문 시기와 캠프 데이비드 방문에도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실용’이란 거창한 깃발을 들고 갔으니 애교로 넘어가더라도 문제는 많다.

회담 결과를 놓고 우리는 한미동맹을 복원했다고 했고 한미동맹을 21세기 전략동맹으로 해석했다. 도대체 ‘복원’이란 말은 무엇이고 ‘전략동맹’은 또 무슨 말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실용이란 이름으로 한미 군사관계를 대미종속으로 이끌어 미국의 동맹전략대로 따르겠다는 결과를 만든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쇠고기 시장 전면개방은 더욱 가관이다. 스스로 검역 주권국의 지위도 버리고 협상의 여지마저 없애버렸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선 ‘좋은 고기 싸게 먹는 길’을 열었다고 자화자찬이다.

미국인과 같은 쇠고기를 먹는 것과 부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는 것과 미국산 무기구매지위를 상향조정한 것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폼’을 좀 잡았는지 모르지만 국가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너무나 크다.

이명박 대통령은 출발할 때 대통령 전세기에 ‘실용’의 깃발을 야심차게 내걸고 떠났다. 그랬으면 귀국할 때 전세기에는 ‘실용’의 깃발에 어울리는 선물이 잔뜩 실렸어야 하는데 선물은커녕 국민들이 짊어져야 할 짐만 싣고 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먼저 무장을 해제하는 바람에 상대국의 입맛만 맞춰준 꼴이 된 것이다. 오히려 상대국에게 ‘실용’을 보태주고 온 것이다.

한마디로 이번 대미·대일외교는 국가의 자존심을 팔아먹은 실패한 외교라고 할 수 있다. 국력이 우리보다 훨씬 강한 나라들을 상대로 하자면 협상을 통해 실익을 챙길 여지는 남겼어야 하는데 퍼주고만 온 것이다. 국익을 위해서는 우길 것은 우길 줄도 알아야 하는데 좋은 인상만 남기느라 상대방의 비위만 맞추고 온 것이다.

문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가가 보수 일색으로 되었으니 앞으로 우리는 이런 일을 계속 겪어야 할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실용’이란 잣대로 모든 가치를 덮으려 할 것이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며 자존심을 팽개치게 할 것이고, ‘도덕이 밥 먹여주냐’며 ‘배부른 돼지’가 되기를 요구할 것이다. 걱정이 이만저만 이 아니다.

박 찬 석 / 본지 편집인oneheart@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