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칼럼 - 박찬석 편집인
1990년 5월 영국에서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 영국 내에 한창 광우병 위험론이 대두됐을 때 당시 영국의 존 검머(John Gummer) 농림부장관이 자신의 4살짜리 딸과 함께 BBC TV에 출연해 “쇠고기가 안전하다”며 직접 햄버거를 먹는 황당한(?) 쇼를 연출한 것이다. 그러면서 “광우병이 동물에게서 인간에게로 전파된다는 증거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당당하게 강조했다. 이어서 “참조할 수 있는 모든 과학적 증거에 비춰볼 때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그러나 2007년 10월 존 검머 장관의 친구인 로저 스미스와 몰리 스미스 부부의 딸 엘리자베스 스미스가 23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안전하다고 했던 인간광우병으로 희생된 것이다. 이 젊은이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영국정부이다. 국민들이 정부의 말을 믿고 따랐는데 죽음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더욱이 이 당시 영국정부는 과학적 자문을 하는 전문가에게 압력을 가해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홍보를 하도록 강요했다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다.
지난달 21일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개방과 관련해 “낙농업자 보호하는 것은 숫자가 적으니 그렇지만 도시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고기를 먹는 것은 그렇다”며 “질 좋은 고기를 들여와서 일반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를 먹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 같은 어이없는 발언 이후 세상은 시끄러울 정도로 찬반 여론에 휩싸였다. 5월 들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수만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리고 있고 인터넷 상에서는 대통령 탄핵 서명자가 무려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참여정부 때인 지난해 10월 당시 임상규 전 농림부장관이 모 라디오에 출연해 “국민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를 수입해야 소비자 후생이 좋아진다는 의견도 있다”고 덧붙여서 구설수에 오르긴 했어도 지금처럼 파장이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때와는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 지금의 사태가 이렇게 파장이 큰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쇠고기 시장의 빗장을 아예 풀어놓고 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대통령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지난 방미기간중 부시대통령에게 커다란 선물을 주고 왔다는 주장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등뼈 등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을 그대로 수입하게 됐을 뿐 아니라 검역기준을 대폭 완화하기에 이르렀고 수출하는 미국 도축장의 ‘잔류물질 정밀검사’도 최초 수입물량에만 한정하기로 하는 등 미국산 쇠고기가 머잖아 국내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여건을 스스로 마련해줬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대통령이 제정신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이 대선과 총선을 통해서 절대적으로 지지한 까닭을 다시금 되새겨야 할 것이다. 국가 경제를 살려달라는 간절한 염원으로 개인적인 허물을 덮어주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국민의 정서에 반하는 정책을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독선과 오만을 버려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는 소수의 의견이라도 최대한 수렴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국민건강을 담보로 한 것이어서 ‘최악의 경우’까지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정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 찬 석 / 본지 편집인oneheart@yg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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