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점순 <대마면>

대마면 성산리 선사마을의 박점순(50)씨 집도 한바탕 식구가 다녀간 흔적이 부산하게 남아 있다.
대마면 원흥리에서 꽃다운 나이 20살에 중매로 5남1녀의 큰며느리로 시집온 그는 30년째 시골 아낙으로 살고 있다. 결혼해 불과 몇달전까지 시아버지를 모시고 산 박 씨는 부모를 공경하는 효심이 깊어 마을 어르신들에게 칭찬을 듣고 있다.
“지난 6월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일전 49제를 지냈습니다. 아직도 시아버지가 식사 때가 되면 집으로 들어오실 것 같고 꼭 살아계신 것 같습니다”라고 눈물을 글썽이는 박 씨는 “10년전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그러셨고 시아버님도 언제나 편안하게 잘해주셨어요. 부모 모시고 사는 사람이 이 만큼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라고 주변의 칭송을 부끄러워했다.
마을의 한 어르신은 “박 씨 시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한복만 입었던 사람이여. 사시사철 한복을 맞춰 드리고 깨끗이 손질해 드리기가 어디 쉬운 일인감. 게다가 시부모를 얌전하게 모셨으니 예쁠 수밖에”라며 박 씨의 평소 모습을 말했다.
박 씨는 슬하에 2남2녀의 자녀를 모두 장성시키고 남편과 1만2천여평의 농사를 지으며 착실하게 농촌을 지키고 마을 어르신들에게도 부족함 없이 공경어린 정성을 전달하고 있는 것.
“지난해 부모님과 저희가 오랫동안 살던 집을 새로 지었습니다. 시아버님 살아계실 때 조금 더 편한 곳에서 지내시라고 지었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는 박 씨는 살아생전 못다 한 죄송함에 못내 아쉬워했다.
“오래전 대마의 한 식당에서 가스가 폭발해 많은 사람들이 화상을 입었을 당시 저희 남편도 화상을 크게 입었지요. 그 후 어려운 치료과정을 겪고 지금도 그때의 후유증으로 불편함이 있어 마음이 아픈 것을 제외하고는 큰 걱정없이 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모두 착하게 잘 커줘 고맙습니다”라며 가족들이 다녀간 뒷정리를 시작하는 박 씨는 늘 편하지만 않았을 세월을 걸어오면서도 긍정적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밝게 지내 아름다움이 더 커 보이고 있다.
‘세상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는 하지만 살다보면 ‘참’ 행복을 느끼지 못하며 사소한 감정에 노예가 돼 불행을 스스로 자초하는 경우가 많다.
박 씨의 맑고 순수한 웃음이 뒤를 돌아보게 하는 교훈으로 남는 것은 우리들 마음이 너무 각박해져서인가보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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