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불갑면 생곡리>

그가 애마인 소형차에서 세살박이 딸과 익숙한 모습으로 하차하는 곳은 나고 자란 친정집이었다.
마당 한켠에서 장에서 사온 쪽파를 다듬어 김치를 담글 채비를 하는 어머니도 김 씨의 방문을 크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
2남2녀중 셋째로 태어난 김 씨는 영광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조금 늦은 30대 초반 결혼했다.
영광원자력본부 협력회사에 근무하는 남편과 경북 울진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그는 남편이 다른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한 곳으로 일터를 옮기자 남편의 권유로 친정으로 짐을 옮겼다.
이렇게 친정에 살면서 농사를 돕던 김 씨는 2005년 친정아버지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본격적으로 농사에 뛰어 들어 지금껏 짓고 있다. 여성 둘이 농사짓기에는 조금 많은 양인 논 5,000여평, 밭 2,000여평에서 벼, 고추, 양파, 콩 등을 재배하고 있다.
“어머니 혼자는 많은 농사를 지을 수 없고 그렇다고 짓던 농사를 포기할 수도 없고 해서 제가 힘닿는대로 농사짓고 있다”라며 환하게 웃는 김 씨는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노인세대가 많은 마을에서 억척스런 귀염둥이로 사랑받고 있다.
김 씨는 “올해는 농사 초기부터 시작된 긴 가뭄과 이은 폭우로 농사짓는데 어려움이 따랐지만 후반기 하늘이 도와 대부분 농사가 잘 지어져 다행이다”며 “어머니와 농사지어 얻은 수익으로 지붕개량도 하고 통장도 조금씩 배불리니 쏠쏠한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치감을 손질하던 김 씨의 어머니는 “남자 이상의 일을 해내는 딸 덕분에 아들 며느리도 아예 잊어버리고 믿고 있다”며 “예초기로 직접 잡초를 제거하고 트럭을 타고 논밭을 누비며 농사짓는 모습을 보면 든든하고 대견스럽다”고 전했다.
김 씨는 서울서 식당을 운영하는 오빠가 식당을 잠시 쉬게 되자 그곳에 보내기 위해 담갔던 김장김치인 묵은지를 광주식당에 납품하며 또 다른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그리고 직접 농사지은 고춧가루도 도시소비자들과 연결해 주문이 늘고 있다.
김 씨는 7년간 친정살이를 하다 지금은 아홉살인 큰 아이가 2년전 학교에 들어가자 광주로 보금자리를 옮긴 상태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출퇴근하며 짓던 농사를 이어가고 있어 더욱 대단해 보였다.
언뜻 보기에는 농사의 ‘농’자도 모르게 보이는 김 씨는 외롭고 쓸쓸한 농촌에 생기를 불어 넣으며 효심 깊은 딸로 고향에 예쁘게 남아 있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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