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점희 <대마중 운영위원>

남편을 도우며 맺힌 콧등의 땀방울이 사랑스럽게 보이는 윤 씨는 20세에 결혼해 17년째 농촌에 머물고 있다.
윤 씨는 서울에서 남편을 만나 바로 남편의 고향인 대마면 화평리로 귀향,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강진에서 3남1녀중 외동딸로 태어나 귀하게 자란 탓에 농촌 일을 전혀 몰랐던 윤 씨는 힘든지 조차 모르고 농사를 배워갔다.
철없는 어린 신부였지만 윤 씨는 시부모 아래서 남편을 믿고 따르며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불만없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이렇게 10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날, 윤 씨는 집앞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는 큰 아픔을 겪게 되고 잠시 살던 곳을 떠나 광주에서 생활했지만 3년후 다시 돌아왔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농촌으로 다시 돌아온 윤 씨는 더욱 성실하게 생활하며 맡겨진 삶에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윤 씨의 노력은 알찬 결실을 맺게 했고 지금은 큰 부족함없이 안정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윤 씨는 3만6,000여평의 적잖은 농사를 지으면서도 대마면생활개선회, 농가주부모임 회원으로 활동하며 관내 경로당과 독거노인 등을 방문해 위로하는 등 이웃사랑 실천에도 앞장서 칭송을 받고 있다.
또 슬하의 2남1녀중 둘째가 다니는 대마중학교 학부모운영위원을 맡아 지역교육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게다가 윤 씨는 이렇게 바쁜 일상속에서도 틈틈이 영광군청에서 실시하는 조리사양성교육에 참여, 자격을 취득해 얼마전부터 묘량중앙초 조리사로 근무하고 있다.
“멋모르고 남편을 따라와 살고 있는 농촌이지만 한번도 농촌생활을 후회해 본적이 없다”는 윤 씨는 “현재 도시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비교해도 뒤질 것이 없고 오히려 한발 앞선 생활을 하고 있어 뿌듯하다”고 농촌을 예찬했다.
이렇게 부지런하고 야무진 농촌 아낙으로 보람을 느끼며 생활하는 윤 씨의 남편 또한 손재주가 좋아 노인들만 사는 마을에 전기나 농기계수리 등을 도와주고 농사철 기계 일을 도맡아 하며 도움을 주고 있어 착실한 사람으로 마을에 소문나 있다.
요즘 농촌은 젊은이들의 부재로 인력부족은 물론이고 지금 살고 있는 세대가 모두 세상을 떠났을 때를 가상하면 현재 남아있는 마을의 존폐위기까지 염려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젊은 인재가 귀한 농촌에 스스로 찾아와 예쁘게 정착해 살고 있은 윤 씨. 그는 마음 착하고 효심 넘치는 마을의 딸로, 며느리로 농촌의 값진 희망이 되고 있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
저작권자 © 영광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