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덕 <백수읍 국악인>

자신의 역량을 내세우고 당당하게 살 수 없었던 시절, 아내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뒤에서 묵묵하게 지켜줬던 그녀들의 삶들을 만난 김금덕(75)씨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다.
백수읍 대전리가 고향인 김 씨는 3대 독자 며느리로 시집와 1남6녀의 어머니로 백수읍장을 지낸 남편의 아내자리를 지키며 어렵고 힘겨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말 좋아서 할 수 밖에 없었던 국악의 길을 걷기까지의 일을 꺼냈다.
어린 시절 아버님이 농악대에서 활동했던 모습을 따라다니며 봐 왔던 그는 “북을 치고 소리를 내며 어우러진 흥겨운 모습에 감흥을 느껴 조금씩 창과 북, 무용까지 배우기 시작한 것이 30년이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광주에 가서 본격적으로 국악을 배우면서 중요문화재 스승들 밑에서 전북 남원에서 불리는 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한 마당인 ‘수궁가’를 완창하고 전수 받았다.
또 그는 전라도지방을 중심으로 한 남도잡가인 육자배기도 완창해 실력자로 거듭나기까지 남모르게 배우느라 힘들었던 날의 기억을 곱씹었다.
현재 대한노인회 영광군지회 및 광주에서 국악에 뜻을 품고 있는 이들을 지도해 남도국악제 등에서 입선자들을 배출하는데 일조한 그는 발산하지 못했던 예술적 재능과 끼를 마음껏 발휘해 그 동안의 아쉬움과 한을 달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는 “영광에는 자신과 더불어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안타깝다”며 “적임자가 나타나면 신명난 공연을 펼치고 싶다”는 뜻을 나타냈다.
또 “자신의 재능을 전수해 후배양성에 힘쓰고 싶은 작은 희망이 있다”며 “국악에 열정을 가진 후배들을 기대해본다”고 덧붙였다.
아직도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데 여념이 없고 “하고 싶었던 국악을 원없이 해 힘들었지만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는 김 씨.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배움의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여성들이 많았지만 역경을 극복하고 꿈을 버리지 않았던 모습에서 그의 삶은 여성들의 본보기가 되는 대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현 세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돈과 명예만을 쫓아 편안한 삶을 영위하는 것만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착각속에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70대 그의 인생이 남달라 보이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 일 것이다.
인생을 돌아봤을 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삶이었다면 그 삶은 더할나위없이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일 것이다. 자신감 있고 풍요로운 삶을 산 김 씨의 인생에 박수를 보내며 계속되는 그의 국악여정을 기대해본다.
전지선 객원기자 qsc13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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