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현 / 법성동초 전 교장

“하루 종일 책보는 낙으로 산다”는 그의 방에는 바른 자세로 책을 볼 수 있는 의자와 책상이 돋보기를 벗 삼아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인상 깊게 다가오는 잘 정리된 그 모습은 김 씨의 성품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지 4년째 되던 해인 1949년 교직에 입문해 1994년 퇴임한 김 씨는 45년간 제자양성에 몰입한 교육자다.
“교직은 가장 좋은 직장이었고 교육자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후회를 한번도 한 적이 없다”는 김 씨는 재직시절 학생들을 위한 교육은 물론 교육발전을 위한 연구에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김 씨는 음악교육에 주력했으며 각종 연구발표로 학급경영우수상을 비롯한 교육감상, 문교부(현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 등 다수의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광주와 진도에서의 근무를 제외하고는 줄곧 영광지역 초등학교를 순회하며 근무한 김 씨는 영광초등학교 근무시절 관내 최초로 기악부를 구성해 광주로 공연을 다니는 등 이례적인 활동을 보여 당시 화제가 되기도.
또 주민들과 학생들이 참여하는 콩쿨대회를 열어 지역화합을 주도하기도 했고 교원현직연구원, 학력평가위원, 음악과장학위원, 군평가위원 등 전문적인 연구담당 교사로 맹위를 떨쳤다.
젊음을 불사르며 최선을 다했던 교직생활을 마감한 후 김 씨는 관내출신 교장들의 모임인 영우회 회장과 명문고육성위원회원을 역임했다.
또 영광출신 교직자들의 모임인 영광교직회 고문을 맡아 영광교육발전의 지평을 여는 훌륭한 조언자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더불어 며칠 밤낮을 세며 오로지 교과연구에만 치중했던 남편을 평생 군소리없이 내조한 아내와 황혼의 마지막 사랑을 꽃피우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은사의 안부를 살피러 찾아오는 머리가 희끗희끗 해진 제자들이 관심에 늘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한 김 씨. 하지만 그는 왕성하게 활동하는 제자들은 물론 현직에서 물러나고 환갑을 넘긴 제자들까지의 염려로 걱정이 크기도 했다.
김 씨는 “교사란 소명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며 성스러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때 존경받는 스승이 되는 것이다”며 “학생들은 교사들의 정성으로 완성되며 품성을 바르게 만드는 교육에 전념할 때 인재육성의 디딤돌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보고 싶은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감상하며 3남1녀를 잘 키워준 고마운 아내와 도란도란 행복한 김 씨는 욕심없는 잔잔한 삶을 살고 있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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