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순 <묘량면>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며 많은 사람들은 가족과 친지를 찾아 고향을 방문해 그간 나누지 못했던 정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요즘 영광은 다가올 추석에 맞춘 모싯잎송편의 주문이 밀려오며 각 떡집이 분주하다.
묘량면 삼효리 효동마을에 위치한 돌담떡집. 이곳도 송편을 만들기 위한 모시를 삶아 준비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곳에서 조용히 일에 몰두하고 있는 정덕순(71)씨.
바로 이웃마을인 효성마을에서 22세 때 3남3녀의 큰며느리로 시집와 시부모와 시동기간을 봉양하고 2남5녀의 자녀를 낳아 기른 정 씨는 30년전 남편과 사별해 홀로 살고 있다.
41세 되던해 남편을 심장마비로 갑자기 잃은 정 씨는 돌쟁이 막내부터 고등학교 1학년생인 큰아들까지 7남매를 고스란이 떠안아야만 했던 것.
더군다나 대·소변을 못가리고 병상에 누워있던 시어머니가 남편보다 앞선 3월에, 남편이 4월에, 시아버지가 12월에 사망하며 한해만 세번 줄초상을 치른 정 씨는 당시 정신이 절반은 나가 있었다고.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이야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지만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 있을 순 없었지요. 저만 바라보고 있는 어린자식들을 생각해 무엇이든지 일을 해야만 했으니까요.”
18년간의 사랑과 7남매를 남기고 떠난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정 씨는 낮에는 남의 집으로 일을 다니고 밤에는 돌아와 2,000여평 자신의 농사를 지으며 정신없이 살았다.
또 자식들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 한우를 4~5두씩 사육하며 악발이 같이 생활했다.
이런 정 씨의 노력은 3남매를 서울로 대학을 보냈으며 나머지 4남매도 모두 고등학교까지 마치게 했다.
정 씨는 “자식들이 특별히 힘들게 하는 것은 없었지만 젊은 여자가 혼자 살다보니 억울한 누명을 씌우며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많아 한 때는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라며 “그래도 자식들이 잘 자라 막내만 오는 10월 결혼식을 올리고 모두 결혼해 아이들 낳고 잘 살고 있으니 지나온 삶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 항상 옆에 낫을 놔두고 잤다”는 정 씨의 말처럼 예나 지금이나 혼자된 여성이 살기에는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오로지 자식뒷바라지에만 평생을 바쳐온 정 씨는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장한 어머니 임에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머님 당신의 헌신적인 삶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며 당신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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