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영광상사화축제 시·수필 인터넷 공모전 입상작
2017영광상사화축제 시·수필 인터넷 공모전 입상작
  • 영광21
  • 승인 2017.10.2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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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 어머니의 상사화

이숙 / 영광군 영광읍

“어머니! 상사화 꽃 축제 보러 가실까요?”
“뭣 하러가야 이 늙은이 가봐야 차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아름다운 상사화 꽃에 치여 자빠질까 무섭다. 갈려면 너나 가거라” 하신다.
우리 어머니는 상사화 축제장 바로 옆 동네에 사시면서도 어머니는 물론 나도 축제장 한번 가보질 않았다. 아니 안간게 아니라 일하느라 못 갔다. 농사를 천직으로 아시고 자고 새면 일만 하시다 늙은 삭신은 일기예보를 알리는 기상청이 된지 오래시며 손가락은 독사대가리로 구불구불 오솔길로 산봉우리로 제멋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어 세월의 고단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무릎 역시 활처럼 휘어져 걸음조차도 걷기 힘드시지만 지금도 밭에 나가 풀 캐며 곡식들을 자식처럼 돌보고 계신다.
흙은 거짓말을 안 한다고 했던가. 손길 간 만큼 튼실하고 알차게 자라 우리 어머니를 기쁘게 한다. 그런 진리를 아시는 어머니께서는 당신이 가꾸는 곡식들에게 절대로 소홀히 하시는 법이 없었는데 하물며 내 자식들이야….
아버님은 산중에 가난한 집 외아들이어서 많이 외로우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당신 자식들에게는 외로움을 주지 않으시려고 3남5녀를 생산하셔 정성을 다해 없는 살림에 시부모님과 자식들 건사하시느라 당신의 머리 한번 제대로 길러 고운 낭자 한번 못하셨다. 머리카락 잘라 팔아 자식들 학비 대느라 말이다.
그렇게 온 힘과 맘과 정성을 다해 키웠건만 큰아들과 막내딸이 어머님을 뒤로 한 채 먼저 세상의 삶에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사람 많은 곳은 싫어하시고 사람이 두렵고 무서워서 산중에서 당신의 손을 필요로 하는 텃밭 자식들과 강아지들과 벗 삼아 당신의 외로움을 달래며 사셨다. 이런 불효자식들이 또 어디 있겠냐만은 삶과 죽음을 예측할 수도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법, 그렇다고 길이 다른 길을 동행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팔십팔세 되신 어머니는 체념하신 듯 먼 산만 바라보시며 한숨짓고 눈물지으며 먼저가신 당신의 영감님만 원망하신다.
“우리 자식들 좀 지켜주지. 그리고 날 데려가지” 하시면서 세상사 다 싫고 귀찮아하신다. 그래서 나 혼자 상사화 축제장에 다녀왔다. 올해 17회째이지만 처음이다. 아름다운 상사화꽃을 보면서 우리 어머니를 생각해 본다.
자기의 몸과 아름다움을 지켜주고 보호해줄 이불같은 그대가 없으니 꽃은 아름답지만 향기를 잃어버리고 외롭고 처량하게 서 있는 민둥한 꽃대가 너무나 쓸쓸하고 처량하게만 보여진다.
우리 어머니 역시 늙어서는 자식들 보호를 받으며 호강스럽게 살아야 기가 살고 외롭지 않으실텐데 가장 든든한 큰 아들을 가슴에 묻고 가슴이 얼마나 무겁고 허전하고 힘드실까 생각이 들면서도 이 며느리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볼 줄도 모르고 내가 힘들고 속상하면 외면해 버리고 만다.
여자이면서도 산천을 호령하고 사신 어머니의 당당함 마저 앗아가버린 자식들의 죽음과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신 우리 어머니를 며느리인 내가 살뜰히 잘 모셔야 먼저 간 그이도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며 우릴 지켜보고 보호해 주리라 믿는다.
불갑산상사화가 우리 영광의 아름다움을 전국에 알리고 관광산업을 키우고 지켜냈듯이 어머니의 올해 연세 팔십팔세, 함께 할 날이 몇날 남지 않은 우리 어머니, 이 며느리가 지켜드리며 보호해 드릴게요. 모든 근심걱정 다 떠나보내고 남은 여생 외롭고 쓸쓸해도 상사화처럼 피고지고를 반복하시면서 오래오래 사시게요.
축제장을 빠져나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호떡과 호박엿을 사들고 집으로 오는 길 여기저기 흐드러진 상사화가 먼저 간 그이의 모습처럼 보여 상사화 옆에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면서 모처럼 여유로운 모습으로 그이가 남기고 간 추억들을 떠올렸다.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그때까지도 텃밭에서 잡초를 매고 계셨다.
나보다 어머니가 나를 더 반기셨다. 혼자서 쓸쓸하셨나보다 하고 호떡을 내밀었더니 옷을 털털 털며 일어서시는 어머니의 머리에는 꺾어 부러진 상사화 한송이가 꽂혀 7, 8세의 소녀 같은 모습이었다. 아, 어머니께서도 저런 모습이 있었구나 생각하며 상사화축제장의 얘기로 호떡맛으로 해를 보냈다. 상사화 꽃빛처럼 노을이 지고 있었다.


■ 수상소감 - 대상 이 숙

꽃은 아름답지만 향기를 잃고 외롭고 처량하게 서 있는 민둥한 꽃대가 나와 우리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에 쓰다가 지우고 쓰기를 반복한 끝에 겨우 한 작품을 만들어 봤는데 무딘 글을 뽑아 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에게 이런 큰 행복과 기쁨을 맛볼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오늘의 삶을 내일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주어진 일과에 최선을 다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겠습니다.


심사평
가을이 물드는 서해바다와 붉은 노을과 애절한 의미를 지닌 상사화가 주는 깊은 감흥과 감성 탓인지 많은 작품들이 그리움, 사랑, 이별, 외로움 같은 상투적인 표현들에 걸려 넘어졌다.
인간이 어떤 사물을 만나거나 상황에 처했을 때 드는 일차적인 감성이나 의식은 대부분 문화적인 맥락에서 자연스레 우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창작을 목적으로 하는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서는 이러한 보편성과 일반성에 기초한 감성이나 표현은 특히 저어하고 금기시 하는 상투성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대상을 차지한 <어머니의 상사화>는 이러한 상투성을 벗어나 자신의 일상에서 접한 주관적인 경험을 차분한 글쓰기를 통해 인간과 세계의 객관적인 진실과 온전히 만나게 하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영광지역에 흔히 피어있는 상사화를 3남5녀의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힘든 삶을 살아온 시어머니와 비유하면서 그 뜻과 유지를 온전히 받들고자 하는 마음과 표현은 일견 뭉클하고 든든하다.
금상을 차지한 수필 <아들! 상사화 축제 같이 갈까>는 단아한 문장의 구사가 특히 돋보였으나 글의 구성과 흐름에 있어 비약이 다소 심했다. 짧은 수필에서 심한 구성의 변화나 비약은 글이 필수적으로 지녀야 할 개연성을 잃기 쉽다는 지적을 부기한다. 또 같이 금상을 수상한 시 <만져진 그리움>은 시로서의 충분한 사유체계를 지닌 것으로 읽혔다.
<소슬바람이 불갑산에 걸렸다>, <소리를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불갑산 골골에 흐느끼는 소리를 듣는다>는 같은 빛나는 표현들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거론한 ‘외로움, 그리움, 설움, 고뇌’ 같은 상투적인 표현들이 결정적인 약점이 됐다.
이외에도 많은 작품들은 영광과 불갑산과 상사화를 아름답고 노래하고 있었다.

심사위원 박 관 서
시인·광주전남작가회의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