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세기는 가히 전쟁의 세기였고 첩자들의 전성기였다. 전쟁은 첩자의 온상이고 첩자는 전쟁의 산물이다. 한 세기에 걸친 이 전쟁사는 바꾸어 표현하면 첩자의 역사라 할 수 있다”-<첩자고>, 23쪽
중국 고대 역사서인 <사기>와 저자 사마천에 31년간 몰두하고 있는 <사기> 전문가 ㈔한국사마천학회 김영수(59) 이사장이 지난 15일 삼국시대의 첩자와 그들의 활약을 다룬 책 <첩자고-삼국시대의 첩보전>을 출간했다.
<첩자고>는 삼국뿐만 아니라 수나라와 당나라로 이어지는 중원 통일국가들과의 치열한 첩보전을 망라한다. 7세기 동아시아의 첩자열전이라 할 수 있다.
고대 동아시아의 국제질서 패권을 놓고 벌이는 대혈투, 그 배후에서 상대의 급소를 파고들고 그것을 막아내려는 첩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첩보전이 펼쳐진다.
고대사 연구하다 첩자 논문까지
삼국시대의 역사에는 전문적인 첩자이론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기록된 첩자 활동들의 사례를 보면 다양하고 치밀하다. 저자는 첩자 활동들의 사례들을 잘게 쪼개 분석하고 다시 맥락을 찾아 연결하고 해설을 달아 생동감 넘치게 한 권에 담아냈다.
책은 6편의 논문과 1편의 해설서로 구성됐다. 제1부는 전체를 조망하는 해설로 이뤄졌고 제2부에는 제1부의 논지를 뒷받침하는 저자의 논문 5편을 실었다.
또 일본인 학자의 글 1편을 부록1에 마련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저자는 1993년 학술지 <군사>에 첩자에 관한 첫 논문 <고대 첩자고>를 발표했다. 고구려 초기 대외관계에 관한 석사 논문을 써야 했던 저자는 고대사를 연구하면서 <사기> 조선열전에 주목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7세기, 삼국이 생존을 위해 수·당까지 가세해 치열하게 국제첩보전을 벌였음을 발견한다. 이런 내용을 파고들어 쓴 논문이 <고대 첩자고>였다.
이후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4편의 논문을 차례로 썼다. 그 사이에 김유신과 을지문덕의 첩보술을 다룬 역사서 <역사를 훔친 첩자>를 펴냈다. <역사를 훔친 첩자>의 내용은 <첩자고>의 제1부를 이룬다.
<첩자고>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것이 아니다. 기록된 사실을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해 고대사에 흔적을 남겨놓은 첩자라는 존재에 대해 연구한 결과물이다.
기원 전후 시작된 첩자의 역사
저자는 <사기>를 통해 첩자의 존재 가치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우리 역사 속에서 최고의 첩보전 전문가 김유신이란 인물을 발견했다.
을지문덕이 심리전을 비롯해 첩자 활용에 능숙했음도 알아냈다. 왕의 동생들을 극적으로 구해온 박제상이란 인물도 첩자라는 틀에서 분석하고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둘러싼 실체적 진실을 첩자의 각도에서 접근해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첩자의 역사는 동서양 모두 4,000년 전으로 올라간다. 수천년 전부터 존재했던 여러 유형의 첩자들이 기발하고 다양한 첩보술로 치열하게 활약했다. 동서양 첩자 역사의 기원은 비슷하지만 이후의 전개 양상은 전혀 달라진다. 16~17세기에 시작된 서양의 첩자 역사가 고대 이후로 2,000년 가까이 단절된 것.
반면 전국시대에 본격적으로 개시된 중국 첩자의 역사는 실체로나 기록으로나 풍부한 자료가 남아있다. 기원 전후에 시작된 우리나라의 첩자 역사는 고대사만 놓고 볼 때 서양에 비해서는 풍부하지만 중국에 비해서는 빈약한 편이다. 7세기 절정에 이르렀던 첩자의 역사, 그에 관한 고대사는 논의할 여지가 많은 시대일 것이다. <첩자고>는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했다.
첩보전 승리 요건은 내부 정치안정
저자가 말하는 첩보전의 승리요건은 국가 내부의 정치안정이다. 지도자가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정보가 있으면 주도권을 갖게 되고 외부의 충격에 대처할 능력이 생긴다. 신라의 삼국통일엔 김유신의 첩보조직이 결정적이었고 을지문덕의 살수대첩도 고구려의 첩보망이 뛰어나 가능했다.
첩자를 잘 활용한 인물은 한신이다. 그는 조나라에 첩자를 보내 그 정보로 배수진 전략을 펴 승리를 거머쥔다. 수적 열세를 극복한 전투로 초·한 전쟁의 물줄기가 바뀌게 된다.
또 공자의 제자 자공은 노나라를 구하러 다섯 나라를 찾아가 외교전을 펼쳐 국제정치 지형을 바꾸고 뜻을 이룬다.
이처럼 <첩자고>를 통해 알 수 있는 첩자, 첩보전의 요점은 지피지기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 <첩자고>는 지피지기의 기술학이다.
지은이 / 김영수
저자 김영수 이사장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대 한·중 관계사로 석사·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영산선학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김 이사장은 현재 한국사마천학회 상임이사, 중국 소진학회 초빙이사, 중국 섬서성 사마천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