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영광상사화예술제 중등부 입상작(글짓기)
2018영광상사화예술제 중등부 입상작(글짓기)
  • 영광21
  • 승인 2018.10.19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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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금상

나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이수민 / 영광여중2

나는 완벽하고 싶지 않다. 깜빡하고 잊어버린 준비물로 속상하지 않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실수로 틀린 한문제에 자존심 버려가며 우는 일도, 잘하지 못하는 체육 수행평가까지 목숨걸며 하는 일도 이젠 그만하고 싶다.
나는 사람들에게 착하고 바른, 어려운 공부마저 잘 해내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나는 완벽하고 싶었다.
결국 이런 나의 완벽주의 때문에 나는 손톱을 뜯는 버릇이 생겼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손톱을 뜯었다. 처음은 어려웠지만 반복해서 입에 손을 가져가니 쉬운 일이었다. 반복이라는 무의식적인 행동들은 무서운 존재다. 나도 모르게 나를 잠식해 버린다.
때문에 손톱들을 뜯는 단순한 행동이 아무렇지 않게 습관이 되고 나 자신이 되었다.
손톱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손톱끼리 툭툭 부딪히는 행동들이 점차 무언가에 홀리듯 더 과격해지고 불안해져 갔다. 난 아무렇지 않게 입술에 손을 대고 있었고 결국 손끝이 벌겋게 부어오를 때까지 손톱을 물어 뜯었다. 이런 나를 의식할 때마다 나는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안좋은 버릇을 가지고 있는 내가 완벽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치 내가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 불안정한 사람으로 보일까봐서.
계속해서 손톱을 뜯다 보니 내 손톱은 바라보기에도 흉한 손톱으로 자랐다. 남들 앞에서 손을 활짝 펼 수 없는 것은 당연하였고 그저 재미있는 공기놀이도 자신있게 할 수 없었다. 불안할 때마다 혹은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물어 뜯었으니 내 손톱이 멀쩡할 리 없었다.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손톱을 뜯는 버릇을 고치라며 나를 나무랐다. 엄마, 아빠, 친구들, 선생님들 모두. 사람들은 나를 안좋은 시선으로 바라 보았으며 때로는 손톱을 향한 욕도 내 뱉었다. 그게 나를 향한 비난인지 혼잣말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말이다. 손은 남과 가장 접촉하기 쉬운 신체였고 그런 곳을 흉하게 만든 나는 계속해서 좋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되었다. 나는 손톱을 뜯었다는 이유로 그런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버릇을 고치기로 다짐했다.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해보기도 하고 인터넷에 검색도 하면서 내 손톱을 당당하게 사람들게 보여주고 싶었다.
손톱에 매니큐어 바르는 게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으면 평소에 바르지도 않던 매니큐어도 발라보고 큐티클을 미는 게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으면 큐티클도 밀었다. 물론 몇년간 해왔던 버릇을 고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었다. 고생해서 길러 놓은 손톱을 참지 못하고 뜯어버리기를 반복하며 실패와 성공 사이의 벽을 하루에도 몇번씩 오갔고 사소한 버릇마저 고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방안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우울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마침내 나는 나를 제어할 수 있게 됐다. 불안할 때마다 올라가던 손을 의식하며 저지하던 행동들이 내 손톱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보듬어 주었다. 끝내 보호를 받던 손톱들이 조금은 못생기고 울퉁불퉁하게 자랐다. 나에게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완벽한 손톱. 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었지만 소중하고 하나뿐인 경험이었기에 나는 안심할 수 있다.
새로운 일이 생겨도, 불안한 일이 생겨도,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이겨낼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이제 나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중등부 은상

종이깡패

이해나 / 영광여중1

보기만 해도 벌벌 떨게 만드는 우리학교 최고의 깡패.
한 학기에 2번씩, 1년에 총 4번 나타나 우리반 아이들에게 “너는 어때?” 하고 물어 보게 만들기도 하고 갑자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기도 하고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게 하는 그의 정체. 이름은 단 두글자, 성은 ‘시’이고 이름은 ‘험’. 외자다.
시험은 초등학교때는 하루만 괴롭히더니 중학교 오니까 3일이나 괴롭히네. 듣기만 해도, 보기만 해도 짜증나는 이름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도덕, 기가 모두 친해져야 하지만 가끔은 친해지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한번쯤은 친해져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한번씩 본다.
하지만 얘네들은 내가 싫은가 보다. 내 머릿속으로 들어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을 보아서 포기하자니 학원을 다닌 의미가 사라질 것 같고, 그렇다고 다시 보기에는 들어오지도 않지만 괜찮다. 나는 누군가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은 점수로 매기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시를 가리킨다. 그냥 자고 일어나면 다시 어제와 똑같은 삶. 시험이 오기전까지 반복되는 똑같은 고민.
어느덧 시험이 찾아왔다. 시험이라는 아이는 잘했다고 생각하면 못했고 못했다고 생각하면 잘된다. 가끔 가다 어이가 없다. 시험이 끝나면 아이들은 모두 한숨을 쉬며 좋아한다. 물론 나도. 그리고 1~2달 동안은 편하게 지내다가 시험이라는 아이가 찾아올 때 아이들은 또 싫어한다.
시험이라는 아이는 언제쯤 사라질까? 그 아이가 사라진다면 공부에 대한 압박감이 사라져 우리 청소년들의 스트레스를 좀 줄여줄까? 다 같이 우리사회가 점수로 사람을 평가하는 제도가 없어지길 빌어보자.

 

중등부 은상

엄마 빛깔

조용준 / 영광중2

우리 엄마 얼굴을 보면
문득 드는 생각
“왜 이렇게 주름살이 졌을까?”

79년생,
이제 40대 길목에 접어든
우리 엄마
“나잇살인 걸까?”
비바람, 서리 맞아 농익은 홍시 빛깔.

2016년 10월6일 오전 2시15분,
5남매중 엄마가 가장 사랑하던 삼촌이
천국으로 가신 날,
“삼촌을 그리워하시는 걸까?”
사무치는 그리움에 붉게 터지는 상사화 빛깔.

엄마 마음 모르고 속만 썩여
마음 고생 심했을 우리 엄마
“나 때문에 힘들어서 주름살이 생긴 건 아닐까?”
새까맣게 속까지 타버린 숯댕이 빛깔.

여울진 주름살 한줄 한줄 너머에
깃들인 엄마의 사랑, 엄마의 꿈.